진도의 다른 이름, 옥주. 옥주표구사의 ‘옥주’는 진도를 이르는 것이다. 진도에 가면 세 가지를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글씨, 그림, 노래다.
과거, 진도에는 유배 온 선비들이 많았다. 글을 읽던 선비들은 유배지에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족자를 만들었다. 선조 때부터 눈에 익은 모습으로, 진도가 고향인 옥주표구사 이상기 사장에게 서화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액자, 족자, 병풍을 만드는 일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이 사장이 누렇게 색이 변한, 반듯하게 접힌 신문 조각을 꺼냈다. “이게 병풍 만들 때 쓰여요. 병풍의 폭과 폭 사이를 미세하게 벌릴 때 쓰죠.”
깨끗한 신문으로 새로 접어 쓸 만도 한데 1989년에 접은 신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요즘 나온 신문으로 다시 접어 사용해 봤는데 이것과 느낌이 달라요.”
미세한 감각의 차이가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을 일반인들은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걸 아직도 쓰세요? 다른 종이를 접어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쉽게 던졌던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우리의 전통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는, 이어가야 한다는 이상기 사장
표구 의뢰가 들어오면 목공소에 틀을 주문하고 커다란 나무판 위에 화선지를 붙이는 배접을 해 하루를 말린다. 먹과 물감으로 주름졌던 화선지가 다림질한 것처럼 구김이 없어지면 떼어서 틀에 붙이고 비단을 덧대고 틀에 넣으면 표구는 완성된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1주일 정도 걸린다. “성격 급한 사람은 이 일 못 해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제 성격과 맞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나무판 위의 배접 흔적이 이 사장이 일한시간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사장의 실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같은 전람회에서 빛을 발한다
전국 각지, 멀리 제주도에서도 출품하는 작가들의 의뢰가 들어올 정도였다. 표구된 60여 개 작품을 싣고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열리는 과천 전시장으로 향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의 크기가 이동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 20년 전부터는 작품이 족자 형태로 바뀌어 출품되고 있다.
아파트로 주거 형태가 바뀌고, 동양화보다 서양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예가들은 줄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병풍을 사용하던 사람들마저 줄었다. 일거리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표구사는 애써 찾아야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지금은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주된 손님이다.
표구란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것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하러 갔는데 한참을 찾았는데도 업종란에 표구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어 제조업으로 등록하고 왔습니다.”
18세부터 표구 일을 시작했다는 이 사장에게 ‘표구와 액자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이 사장은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것과 유행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표구는 액자처럼 기계로 찍어낼 수 없다. 하나하나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그 섬세한 과정에서 작품은 완성되고 틀 안에서 비단으로 곱게 감싸진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 옥주표구사 전화 031-743-9054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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