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대접을 들고 몇 개의 계단을 올라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어르신, “호박죽을 좀 쒔어, 먹어 봐.” “건강은 괜찮으시지요? 조심해서 다니세요.” 나누는 인사가 마냥 정겹다.
오늘도 문숙 씨는 창가에서 정다운 이웃들의 옷을 다림질하며 마을 길을 내려다본다.
상대원2동 바람골 언덕을 오르는 끝자락에 ‘국가 기능사 자격증보유 양장 맞춤 전문’ “대화세탁” 간판이 눈에 띤다. 이곳에서 ‘2021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박문숙(67) 씨를 만났다.
그는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금광동에 계시는 친정어머니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드리고, 상대원2동 세탁소로 돌아와 하루 일을 시작한다.
남편은 회사 경비 일을 하면서 쉬는 날은 가게를 지켜주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다. 상을 받으면 고마운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해 준다. “당신 덕분에 상 받았어요”라고.
“어린 시절 어느 날 마장동 쪽방촌에 불이 났어요. 트럭에 실려 온 곳이 지금의 단대오거리, 그렇게 어려운 성남 생활이 시작됐어요.” 문숙 씨는 어머니 혼자 7남매를 키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맏이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매일 단대오거리에서 종로까지 버스를 타고 의상실에 출근했다. 그러다 금광동에 세를 얻어 8년간 의상실을 운영했다. 옷을 맞춰 입던 시대라 두 명의 기술자를 뒀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친정집을 지을 때 아가씨가 집을 짓는다고 공사하는 분들이 놀리기도 했다.
문숙 씨는 사우디로 일하러 가신 고모부께 늘 안부편지를 썼다. 고모부와 함께 일하던 지금의 남편과는 고모부의 소개로 만났다. 남편은 1980년 4월 결혼식을 올리고 이틀 후 사우디로 일하러 떠났다. 그렇게 또 손편지는 국경 없이 오갔고, 남편은 1년 6개월 만에 귀국했다.
상대원2동에 낡은 집이지만 내 집을 장만하고, 1984년 큰아들 이름을 따서 ‘대화세탁소’ 간판을 걸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은 다시 사우디로 떠났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기다림은 지난날 삶의 추억으로 남고, 쉼 없이 ‘반려 재봉틀’과 함께 달리다 보니 어느새 38년이 됐다고 한다. 세탁은 기계가 하지만 수선은 문숙 씨의 야무진 손끝에서 재탄생한다.
문숙 씨에게는 성남소비자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사고세탁·의류심의회 심의위원으로 30년간 무료 심의 활동을 했던 것이 자원봉사의 시작이었다.
통장 시절 모금과 일일 찻집 운영기금으로 이웃 아이 수술비를 지원했고, 어머니 자율방범대, 경찰서 안전모니터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주민자치위원, 세탁협회 동부지부 감사로 활동한다.
‘나눔 세탁봉사단’ 단원으로 17명의 세탁소 대표들이 뜻을 모아 중원·수정 홀몸어르신, 장애인들의 이불빨래를 12년(137회)째 해오고 있다. 매년 명절이나 연말이면 상대원2동 ‘서로 나눔’ 릴레이에 참여한다. “모두 내 부모, 내 형제 같아서 작은 나눔이지만 참여하게 돼요.”
정든 삶터가 재개발돼 머지않아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문숙 씨는 멀지 않은 상대원3동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했다.(대화세탁 031-744-9805)
취재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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