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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봄을 품은 겨울눈이 들려주는 지혜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1/21 [16:3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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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가진 겨울나무는 겨울숲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겨울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얻을 수 있는 의외의 즐거움이 있는데 나무의 겨울눈을 보며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잎이 떨어진 자리에 겨울눈을 품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가 잎 또는 꽃을 감싼 형태를 겨울눈이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둥그스름하니 통통하기도 하고 가시처럼 뾰족하기도 하다.

 

나무마다 겨울눈은 참 다양하다. 그래서 겨울눈을 나무의 지문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겨울눈이 비슷한 나무 없이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겨울눈이 장차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꽃이 피면 꽃눈, 잎이 되면 잎눈, 잎과 함께 꽃이 나오면 섞임눈이라고 한다. 대개 잎눈은 잎을 돌돌 말아 품고 있다 보니 뾰족하고, 꽃눈은 입체적인 미래의 꽃을 감싸 안은 상태니 동글동글한 모습이다.

 

겨울나무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에 겨울눈이 마르지 않고 얼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무장한 채 겨울을 보낸다. 먼저 갯버들이나 목련 쪽동백 같은 식물은 우리가 겨울에 털코트를 입듯이 연회색빛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로 겨울눈을 감싸 보호하고 있다.

 

털코트 대신 가죽코트를 선택한 나무도 있다. 물푸레나무의 경우 검은색에 가까운 가죽에 둘러싸여 겨울을 안전하게 보낸다.

 

끈끈한 즙이나 번질거리는 기름 성분의 옷을 선택한 식물도 있는데 겨울눈에 끈끈한 부동액을 발라 어는 것을 방지하는 원리다. 칠엽수의 겨울눈은 수지 성분의 끈끈한 물질을 분비해서 겨울을 버티는데 햇빛을 받으면 번질거리곤 한다.

 

반면 비늘옷을 선택한 나무들은 여러 겹의 단단한 비늘조직으로 겨울눈을 싸고 있다. 동백나무나 개나리, 진달래, 참나무 등이 해당된다.

 

겨울눈 아래에는 지난해 잎들이 달렸다 떨어진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것을 엽흔(leaf scar)이라고 한다. 또한 잎이 달렸던 흔적 속에는 양분을 날랐던 관속이 지나간 흔적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다양해 겨울눈과 함께 찾아보면 흥미롭다.

 

겨울눈은 이름을 들으면 왠지 겨울에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겨울이 다가왔다고 뚝딱 생겨난 게 아니다. 식물은 잎이 떨어지기 전인 여름에 미리 겨울눈을 만들어 두는데, 더 일찍 만들기도 한다.

 

개나리는 5월에 미리 겨울눈을 만들어 둔다. 이듬해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려면 겨울눈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양분이 많을 때 미리 만드는 것이다.

 

다음해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여름부터 만들어 낸 겨울눈에 담긴 겨울나무의 지혜. 미래를 위해 우린 지금 뭘 준비하고 있나? 겨울나무에게서 지혜를 배운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