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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전파를 탐지하던 소년, 전기에서 길을 찾다

신흥3동 은성전파사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2/24 [09:2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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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성전파사 외관. 최근 은성전파사에서 은성전자로 상호명을 바꿨다.     ©비전성남

 

▲ 가전제품을 수리할 수있는 각종 공구와 비품     ©비전성남

 

▲ 선풍기 수리 및 판매용 선풍기 날개     ©비전성남

 

▲ 외부 출장 시 착용하는 공구들     ©비전성남

 

소년은 장대의 끝에 전파를 탐지할 수 있다는 다이오드를 달고 주파수를 찾아다녔다. 치지직~ 전파가 탐지되는 순간 라디오에선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네 작은 전파사에 가서 놀던 때가 가장 즐거웠다”는 은성전파사 양근철 대표.

 

흑백 텔레비전의 등장은 우리 삶을 많이 바꿔 놓았다. 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한 티브이(TV)는 티브이장을 만들어 들여놓을 정도로 그 시절 귀한 물건 중 하나였다. 극장의 커튼이 열리는 것처럼 티브이장의 문이 좌우로 열리고, 흑백화면의 등장….

 

옥상에 있는 안테나는 바람만 불면 주파수를 놓쳤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레슬링이나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화면에서사람이 사라지면 티브이의 몸뚱이를 두들겨 댔다. 소리와 화면이 나오면 탄식과 푸념은 감탄과 안도로 변했다. 그것이 통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옛날엔 가전제품이 작동하지 않으면 두들겨 패면 말을 듣는다는 말이 있었죠. 그건 납땜이 잘 안 돼서 일시적으로 접촉이 끊어진 거예요. 전에는 계기판 위의 전선을 일일이 납땜했어요. 고장이 나면 끊어진 부분만 다시 이어 주면 됐죠. 지금은 한꺼번에 납땜을 하므로 한부분이 고장 나도 다 바꿔야 해요. 그래서 수리비가 예전보다 더 들죠.”

 

양근철 대표가 오래전 전파사 이야기를 풀어냈다. 은성전파사라는 이름으로 1974년에 전파사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만 40여 년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전파사에서 물건 수리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양 대표는 제대 후 티브이, 라디오 수리학원에 다니고 전기교육을 받았다. 이런 양 대표가 안테나 설치와 가전제품 수리분야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 옛날에 사용하던 두꺼비집과 현재 사용하는 차단기를 비교 설명하는 양근철 대표     ©비전성남

 

“우리나라 전압이 1990년대 중반 220V로 바뀌며 기존 110V로 쓰던 제품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도란스(트랜스·변압기)가 잘 팔릴 때가 있었다. 아파트 입주 때 건설회사에서는 도란스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한다. 

 

코끼리밥솥, 다리미는 해외에 다녀오는 길이면 무조건 사 들고 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우리나라 전압이 외국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사 들고 온 제품을 도란스 없이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는 일은 허다했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라디오, 선풍기. 전기를 이용한 제품이 고장 나면 무조건 찾아야 했던70년대에 전파사는 참 바쁜 곳이었다. 가전제품을 수리하며 새제품을 판매하기도, 오래된 물건을 수리해 되팔기도 했다. 

 

전파사의 바쁨이 한가로움으로 바뀐 건 가전제품 AS 관리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발전된 기술로 새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다. 사람들은 고장 난 제품을 고쳐 사용하기보다는 새로 구입하는 것을 선택했다. 성남에 400~500곳 되던 전파사는 이제는 눈 씻고 찾아야 겨우 한 곳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됐다.

 

볼 것 많은 지금은 여럿이 모여 티브이를 보는 일조차 추억으로 느껴지게 한다. 한 사람은 안방에서 한 사람은 옥상에서 서로 큰 소리로 소통하며 안테나의 주파수를 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됐어?”, “아니, 조금만 더 돌려 봐! 됐어, 이제 나온다!” 티브이가 나오는 순간의 쨍한 기분을 기억해 본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