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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나도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2/24 [11:0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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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대 없이 가지에 풍성하게 뭉쳐 피는 생강나무꽃     ©비전성남

 

 

회색빛의 겨울이 물러가며 바람이 부드러워지는 2월 말부터,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개나리 진달래보다도 먼저 아주 작고 노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나무가 있다. 생강나무다.

 

생강나무(영어명: Korean spicebush)는 줄기나 잎에 상처를 내면 진한 향을 발산하는데 그 냄새가 마치 생강 같아서 얻게 된 이름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종의 소독제 같은 화학물질로 생강나무가 만들어 내는 방어물질이다.

 

색깔과 생김새가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생강나무를 산수유로 착각하곤 한다. 주변 공원이나 정원에서 재배되는 중국 식물인 산수유는 작은 꽃이 기다란 꽃대에 매달려 퍼져 피는데 숲속 약간 건조한 양지 쪽에서 3~5m까지 자라는 생강나무는 꽃대 없이 가지에 풍성하게 뭉쳐서 핀다.

 

녹나무과에 속한 낙엽관목인 생강나무는 한반도 자생의 고유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 봄을 여는 꽃나무들이 그렇듯 생강나무도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일찍 겨울잠에서 깬 허기진 곤충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중요한 식량자원의 하나가 돼준다.

 

부지런한 곤충들에게 먹이를 내어주는 이른 봄 생강나무꽃뿐만 아니라 가을의 생강나무 열매는 겨울채비를 하는 산새에게 주요 식량자원이다. 9, 10월이 되면 새까맣게 익은 7~8㎜ 검은색 생강나무 열매 덕에 숲속은 풍성한 가을잔치가 열린다. 도심 공원에 생강나무를 심어보자는 것도 도심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야생 조류들에게 훌륭한 식량이 되기 때문이다.

 

정선 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 동박이라고 부른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를 가리키며,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에 나오는 싸리골 올동백(또는 올동박)은 남쪽에서 겨울에 볼 수 있는 붉은 꽃 피는 동백이 아니라 생강나무다.

 

동백꽃이 자생하지 않는 강원도 및 북부지역에서 꽃의 색과 모양, 나무 형태 등이 전혀 다른 생강나무를 동백으로 부르는 이유는 동백기름을 사용하던 시절, 비싸고 귀한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하고 머릿기름으로 사용하면서 동백기름으로 부른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한다.

 

두메산골에서는 생강나무기름이 어둠을 밝히는 등불에 사용됐는데 귀한 손님이 올 때만 켜는 훌륭한 기름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생강나무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띄엄띄엄 피면 흉년이 들겠다고 염려하기도 했고 꽃을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주머니(향낭)에 넣어 방에 걸어두기도 했다. 이는 추위 속에 꽃피는 강인함이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민속이다.

 

2021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 봄철 평균기온이 평년 대비 0.25℃ 상승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 산림의 ‘생태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제주 애월곶자왈 생강나무꽃의 경우 개화가 9년새 21일 당겨졌다고 한다.

 

해마다 빠르게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는 지구온난화의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며 지구가 보내는 경고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안겨주기도 한다. 올해는 언제 피려나?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봄을 알리며 필 노란 생강나무꽃이 기다려진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