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누군가 들어선다.
이른 아침 계산대에 어김없이 올라온 우유 한 팩.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불티나게 나가는 원두커피. 그냥 지나치긴 너무 아쉬워 다시 한번 돌아보는 2+1 상품. 매일 똑같은 시각에 팔려 가는 담배 한 갑. 여상하지만 다채로운 한 편의점의 모습이다.
2014년부터 분당에서 편의점을 운영해 오고 있는 박규옥 씨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와 함께 간 중국에서 중문학 석사와 문예학 박사 학위를 받은 흔하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귀국 후에 중국 기업과 무역 관련 법규를 조사하는 일을 하다가, 남편과 함께 본격적으로 편의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박규옥 씨의 이력을 들은 사람들은 ‘배가 부르니 편의점 일을 해보겠다는 거냐’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관련 일이 노력만큼의 수익이 나오지 않았던 박규옥 씨는 그 당시 다른 무엇이 절실했었다고 회상한다.
지인의 부탁으로 울산에서 처음 운영했던 큰 가게는 업주들의 텃세로 6개월 만에 쓴맛을 봤다.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로 다시 시작한 일이 편의점이었다.
분당 한 번화가에 위치해 있던 가게는 매출이 좋았다. 그러나 매출이 쑥쑥 오르자 임대료는 더 크게 올랐다. 새로운 점포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달간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구미동 한 오피스텔 내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박규옥 씨의 편의점은 그녀의 이력만큼이나 특이하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의자에 앉아서 손님들이 구매한 물건들을 계산해준다. 필요 이상의 친절도 없다. 다툼이 생기면 경찰을 부르는 것은 오히려 그녀 쪽이다.
친절은 상호적이며 점주도 점원도 당당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진상이라는 고객들은 안타깝게도 박규옥 씨의 편의점에서는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당차고 거침없는 성격의 점주가 운영하는 구미동의 편의점에서는 늘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겨난다.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진상 고객들을 향한 그녀만의 소심한 복수,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각에 나타나 방울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무서운 고객, 단지 내 가게마다 허세를 뿌리고 돌아다니는 고객 등.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화들을 박규옥 씨는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동하는 차 속이나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틈틈이 기록한 수십 가지의 단편들은 그녀의 성격처럼 시종일관 거침없고 유쾌하다. 여기저기 묻어 있는 박규옥 씨의 재치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점포에 창이 있고, 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이곳 구미동에 가게를 열었다는 박규옥 씨.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편의점을 운영하며 성격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한다.
사람은 서로 이해하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그녀는 책 제목이 너무 무서워 모두 자기를 정말로 그렇게 볼까 봐 겁이 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없는 것 빼고 다 판다는 편의점에서 왜 친절은 팔지 않는 걸까? “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을 굳이 팔라고 하면 되겠어요? 나는 친절을 팔지 않아요. 그냥 줍니다.” 그녀는 답한다.
취재 서동미 기자 ebu73@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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