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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이야기 속으로] 쌍화점(雙花店)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4/07/16 [20:1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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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바와 같이 <쌍화점(雙花店)>은 남녀 간의 애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우물가에서, 사찰에서, 그리고 식당 등 여러 다양한 공간에 처한 남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위 세 공간이 노래 배경으로 선택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시 고려인들이 즐겨 찾던 공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쌍화점>도 고려인들의 일상 속 자유연애를 그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 <쌍화점>에는 사실 또 하나의 배경이 존재한다. 바로 회회(回回)아비가 운영하는 쌍화가게가 그것이다. 게다가 이 네 번째 배경은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었다. <쌍화점>이라는 노래 제목의 배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영화 ‘쌍화점’(2008) 포스터   © 비전성남

 

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이 노래는 우물, , 밥집에 이어 하필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당시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그만큼 고려에 많았기 때문일까?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노래의 가사에 두드러지게 노출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쌍화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만두인지 떡인지, 또는 귀금속인지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이 노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이 노래의 원형이었을 고려의 민요를 고려 정부가 채집해 현재의 모습으로 가공한 시점은 1270년대다. 이때는 몽골의 30여 년에 걸친 침공이 1260년 끝난 이래 15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고려와 원제국 간에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된 때다.

 

아직 몽골의 군사적 위협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제국을 통한 여러 외국인들과 문물의 유입이 고려인들을 불안케 만들던 때다.

 

물론 고려인들은 이미 왕조의 전·중기 이래 외국의 문화 유입, 또는 외국인들의 도래에 익숙했던 이들이다. 송나라 상인들의 방문이 11세기 이래 줄을 이었거니와, 고려 정부로서도 송 문화의 수입을 적극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골 원제국의 위세는 송나라의 그것을 훨씬 상회했고, 자연히 그로부터의 영향도 훨씬 지대했다. 제국인들을 통해 들어오는 이국적인 문화와 외국인들의 동태에 고려인들이 이전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몽골 원제국의 오르탁(Ortaq) 무역 붐에 힘입어 중국과 서역을 주름잡던 회회(回回) 상인들의 위세가 등등했다. 이들은 13세기 중반 이래 14세기 중반까지 한반도에 곧잘 등장했다. 무역 물자를 구하기 위해, 채무에 시달리면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 그리고 노예무역 와중에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려에 출몰했다.

 

위에 등장한 쌍화가게의 회회인 사장도 그중 하나였을 것인데, 이들의 활동은 어떤 때는 고려에 도움이, 어떤 때는 위협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 고려가요 ‘쌍화점’ 악보. ≪대악후보(국립국악원 소장)≫ 수록  © 비전성남

 

이때 재위했던 고려의 국왕은 충렬왕(재위 1274-1308)이다. 그는 여러 새로운 상황에 놓여 불안에 떨던 고려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이에 고려 백성들이 익숙하게 즐겨온 고려의 전통 음악, 즉 토속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속악(俗樂)’이라고도 하고 고려 한반도의 전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향악(鄕樂)’이라고도 하는 음악을 민중에 적극 유포하는 데 노력했다.

 

<쌍화점>도 그중 하나였음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속악조에 이 노래가 실려 있음에서 확인된다. <쌍화점>의 원제목도 실은 삼장(三藏)’이었는데, 한 연에 등장하는 절의 이름이 바로 삼장사다. 불교의 나라였던 고려인들에게 이 노래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익숙한 노래였던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다만 충렬왕으로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와중에도, 앞으로 닥칠 상황에 백성들을 대비시키는 것 또한 필요했다. 그런 상황은 다름 아닌, 앞으로도 계속될 제국 문물의 도래, 그리고 제국인들의 고려 방문과 중장기 체류였다.

 

이에 충렬왕은 전통 멜로디로서의 <삼장>에 당시의 현실을 표현한 새 연을 추가, 고려의 전통 속요를 시의에 맞는 내용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남녀상열지사라고만 알고 있는 <쌍화점>의 탄생 배경에 몽골의 침공, 제국의 위협, 그에 대응하는 국왕의 기지, 그리고 다문화적 성격이 한층 강해진 고려 사회의 변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고려시대의 역사가 달리 보일 것이다.

 

※ 쌍화(雙花): 만두, 떡 또는 귀금속 추정 

※ 회회((回回): 무슬림을 신봉하는 중앙아시아 출신 상인 

 

특별기고 이강한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https://www.aks.ac.kr)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