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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이야기 속으로] 미국인이 쓴 순한글 세계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4/08/29 [14:2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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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민필지>에 실린 유럽 지도, 국립한글박물관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육영공원1)의 초대 교사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가 1891년 펴낸 한국 최초 근대적 교과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식 학교2)에서 교과서로 널리 활용되며 당시 조선인들이 근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표지부터 본문까지 한글로만 작성됐다. 학문의 언어가 한문이었던 19세기 말 지식서를 순한글로 간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사민필지>는 먼저 태양계와 지구에 대해 설명한 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각 대륙에 속한 60여 개 국가들을 소개한다. 각 국가의 위치를 경도와 위도로 기술하고 면적, 지형, 기후, 소산물, 인구, 종족, 언어, 정치 체제, 주요 도시, 생산품, 수출입품, 군사력, 교육 제도, 종교 등 각국에 대한 당대 최신 정보를 제시했다. 태양계 궤도와 세계지도 등을 수록, 국제 정세에 대한 헐버트의 개인적 관점도 담았다.

 

헐버트는 육영공원에서 조선의 문무 관리들과 양반자제들을 교육했다. 당시 조선은 여러 국가와 통상조약을 맺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헐버트는 조선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세계 지리와 국제관계에 대한 교육이라 판단했다. 또 일반인에 대한 보통 교육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글이 그 매개체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선비(士)와 백성(民)이 모두 반드시(必) 알아야(知) 할’ 내용을 담은 <사민필지>를 순한글로 간행한 것이다. 이후 <사민필지>는 그 내용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895년 의정부 관리들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책 서문에서 헐버트는 조선 사람들이 중국 글자를 숭상하나 조선의 글자는 한글이며, 한글은 선비와 백성,남녀가 모두 널리 보고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1896년에 창간된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5년이나 앞선 헐버트의 탁견에 감탄하게 된다.

 

1) 1886년 조선 정부가 근대식 교육을 위해 세운 왕립 학교

2) 육영공원, 배재학당, 한성사범학교, 숭실학교, 경신학교 등

 

▲ 순한글로 작성된<사민필지>국립한글박물관     

 

 

특별기고 안예리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국어학 전공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aks.ac.kr )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