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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국경은 지리가 아니라 문화

  • 관리자 | 기사입력 2012/05/24 [21:0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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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산지에서 본 우리 문화
독자적 문화 일군 선조들이 사무치게 그리워


세상에서 가장 가기 싫은 나라를 들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중국을 꼽습니다. 보이차 산지가 중국 운남인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통시장 역시 광동성 광주 방촌시장임을 감안하면 의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그런데요. 어느 나라를 가나 아무것이나 잘 먹는 제가 중국만 가면 영 먹지를 못합니다. 북경이나 상해, 광주, 곤명은 각각 거리만도 엄청 떨어져 있습니다. 음식에도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도시에서도 음식을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운남 소수민족들이 사는 보이차 산지를 기대하기도 했었습니다. 광주에서 운남 성도인 곤명까지 비행기로만 3시간 넘게 걸립니다. 하룻밤 묵고 새벽에 시쌍반나 지역으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탑니다. 50분가량 지난 뒤 도착해서 렌트카로 최대 산지 중 하나인 이무정산으로 올라갑니다. 고지대인 이무까지 가는 데 무려 4시간 이상 걸립니다.

소수민족이 사는 경유지 촌락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 전역의 도시에서 흔히 먹게 되는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무나, 칠수동, 마흑채, 의방 지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수민족만의 토산음식이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는 중국화한 음식이 대세입니다.

표 나게 기름지고, 자극적인 향신료가 듬뿍 들어있는 음식! 시골에서 자라서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이런 음식만은 속이 뒤집혀서 먹지를 못합니다. 콩나물이나 배추 데쳐 만든 반찬에도 어김없이 들어가는 돼지고기를 보기만 해도 김치생각이 절로 납니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밥알에다 가져간 고추장을 비벼서 먹습니다. 자꾸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규정하는 말들만 떠오릅니다. 개운하고, 칼칼하고, 담백하고, 시원하고….

급기야는 음식 맛을 잘 비벼 넣어서 시를 더욱 감칠맛 나게 하는 백석의 시가 떠오릅니다.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백석의 이 시 후반부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구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해집니다. 그러나 곧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가 그 널따란 중국 변방이면서도 오랫동안 대륙과는 전혀 다른 음식문화를 가꾸어왔다는 구체적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국의 음식문화가 그르다, 그르지 않다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만의 환경에서 자신에 맞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창조해낸 것에 대한 찬탄인 것입니다.

보이차 때문에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저는 문화가 위대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중국의 음식문화와는 전혀 다른 음식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크게 느꺼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진정한 국경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건행 / 
보이차 전문점 ‘티마켓’(서현동) 대표. 한양대 국문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 간지 등에서 미술·사건·증권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임권택 감독의 <창>의 원작이 된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가 있다.

 

이무정산 의방 차마고도 길에서 필자. 말들이 숱하게 지나다녀서 큰 돌들이 반들반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