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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죽음에의 동경?

  • 관리자 | 기사입력 2012/06/26 [15:2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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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8백년이 넘었다는 운남 이무정산 의방산 정상에 있는 차나무. 이처럼 차는 시간의 즐거움이다. 사진제공 티마켓

보이차는 시간을 즐기는 차 
황동규 시인의 『풍장』보다 황홀한 일상을

차나무과인 동백을 좋아합니다. 잎이 톱니 모양인데다 두툼해서 동백과 차나무를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보이차에 빠지기 전부터 동백을 좋아했는데 꽃이 지는 그 끔찍한 특성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몇 년 전 선운사에 갔다가 작은 동백을 한 그루 샀습니다. 보이차 찌꺼기를 거름으로 주어서인지, 북방 한계선이 북상한 때문인지, 동백이 잘 자랐습니다. 몇 년 전부터 봄에 붉은 꽃이피었습니다.

직접 키운 나무에서 꽃이 피니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동백 주변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누워서도 베란다에 있는 동백꽃을 자주 바라다보았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꽃이 낱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송이째 툭하고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목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섬뜩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죽음에의 공포였습니다.

죽음에 초탈하기 위한 몸부림인 황동규 시인의 『풍장(風葬)』을 읽었습니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풍장 1」 부분>


그러나 이 시를 읽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시기는커녕 더욱 깊어졌습니다. 슬퍼서 시를 마저 읽지 못했습니다. ‘아, 나의 정신세계란 연약함 그 자체라니!’ 스스로 탄식하고 또 탄식했습니다. 어찌 보면 위대한 노시인의 삶과 죽음,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보이차를 즐기면서 동백꽃과 『風葬』을 떠올립니다. 여전히 가슴이 시립니다. 그러나 그때 그 당시와는 좀 다릅니다. 지나치는 세월에 대한 무상이 좀 가셨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보이차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즐기는 차입니다. 시간을 즐기는 차! 수없이 많은 미생물들의 작용으로 지속적으로 깊어지기 때문에 1년 뒤, 5년 뒤,10년 뒤가 기다려집니다.

지난여름에 처박아 두었던 차가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단맛이 몰라보게 올라와서 깜짝 놀라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번 겨울, 내년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이런 보이차 생활은 동백꽃이 어느날 갑자기 목을 끊는 것에 대해, 『風葬』의 시린 시구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합니다.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속절없는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졌기 때문일까요?


이건행 / 보이차 전문점 ‘티마켓’(서현동) 대표.
한양대 국문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미술·사건·증권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임권택 감독의 <창>의 원작이 된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