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랫동안 김기덕 감독 ‘광팬’이었습니다. 그의 영화 디브이디(DVD) 타이틀을 사 모으면서 문제작 <섬>의 촬영현장도 가 보았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가 독특한데다 메시지가 강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영화로부터 빠져나왔습니다. 왜 그랬는지를 제6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18번째 영화 <피에타>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잔인한 슬픔. 맥락(서사)보다는 부분(전체를 이해하지 않고도 그의 영화는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에다 승부를 거는 단편영화 같은 요소. 이런 점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슬픔은 숱하게 눈을 질끈감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불편함, 낯설음은 그의 영화가 지니고 있는 미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에타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라, 저 닭장 속의 폭력을, 하면서 끊임없이 그쪽에 시선을 돌릴 것을 강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밑바닥 인생 사이에서도 예외 없이 돈은 신(神)입니다. 반대로 사랑은 사치입니다. 서로 물고 뜯습니다. 그 폭력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피에타는 그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알제리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이 하층민 사이의 폭력을 목격하고 최초로 사용했던 용어 ‘수평적 폭력’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수평적 폭력은 ‘수직적 폭력’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김기덕 감독영화에서 멀어진 근본적 요인일 것입니다. 피에타에서 채무자들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강도(이정진)’의 뒤늦은 뉘우침 끝에 택한, 피해자 소형트럭에 매달려 죽는 마지막 결말을 보고 우울했던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도, 더욱이 구원도 아닐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닭장 속에서 닭들이 아비규환인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커다란 힘이 작용한 탓입니다. 그 힘은 구조적모순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천착하지 않는 ‘수평적 폭력에 주목!’ 메시지는 그래서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덕 표 영화는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영화에 없어서는 안 되는 축복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건행 / 한양대 국문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미술·사건·증권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임권택 감독의 <창>의 원작이 된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가 있다. 보이차 전문점 대표.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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