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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격40주년 - 성남을 추억하다(3)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때를 아시나요?

  •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4/24 [22:1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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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 산수유도 꽃소식을 전해 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바람이 차다. 은행 일을 보러 내려가다 ‘구 시청 자리’에 다다랐다. 올려다본 눈 위치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은 눈에 선한 건물, 그러나 이제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며 생을 마감한 구 시청 건물. 쳐진 울타리 사이로 살그머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왼쪽은 시청의 모태가 된 성남출장소 개소식 사진이다

혹자들은 ‘철거민’, ‘광주대단지사태’ 등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단어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 출장소를 시작으로 1973년 시청사가 되었고, 그 청사는 자리를 옮겨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생명을 다하고 사라졌다. 울타리 너머로 황량한 건물 잔해만 나뒹굴고 있다.

‘이곳은 몇 번이나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다 내어주고 빈 가슴이 된 이 자리는 또 다른 주인을 위해 준비 중이다. 2009년,시청을 여수동으로 떠나보내고 2017년 시립의료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출장소 뒤편 구릉지에도 나중에 새마을 주택처럼 똑 같은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게 된다. 지금은 그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른쪽은 성호시장 사진. 

대부분이 건설노동자로 팍팍한 삶을 이어온 이곳 사람들. “우리 막내를 여기서 낳았는데, 그놈이 43살이여. 주유소 자리 있지? 거기하고, 저 위 강씨네에 우물이 있었지.” 

대충 자리 잡고 살다 보니 물도 귀했다는 어느 아낙에게 우물사진 있냐고 물으니 “먹고 살기 어려워 사진 찍을 여력이 어디 있었겠나?”고 반문한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살림살이, 누구를 탓하랴. “사방공사나 공공근로를 하고 받은 하루 품삯이 90원짜리 전표 한 장이여.” 

종일 가쁜 삽질을 해대며 날품 팔은 전표는 생계를 위해 내다 팔아야 했다. 10원은 깎고 80원만 쥐어 주는 돈을 들고 장터로 향한 남정네가 쌀 한 됫박이나 사곤 했을 북적대는 시장거리 모습이 사진 속에 있다.

손맛 좋은 국밥집 아지매가 따끈히 토렴해 주는 국밥 한 그릇 사 먹고 싶었을 터이지만, 집에서 기다릴 아낙과 자식들을 생각해 터덜터덜 헛헛한 발걸음으로 저 비탈길을 올랐을 남정네는 이제 아무것도 못한단다.

사진 속 ‘성남추진위원회’ 간판과 ‘보리수양장’ 간판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박경희 기자 pkh22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