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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성남판소리보존회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 성남의 소리꾼, 연당 문효심 명창

  •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7/26 [17:2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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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에서 첫딸로 태어난 문 선생은 일본유학을 하고 바이올린 연주, 시조 소리를 잘하시던 외할아버지 등에 업혀 시골 논두렁길 위에서 육자배기를 들으며 외가댁의 음악성을 고스란히 받고 자랐다. 

외삼촌들까지 작곡도 하고 악기연주도 하고, 친정어머니도 30년 이름 있는 명창에게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수료해 귀감이 됐다. 선생은 3년의 교편생활을 마감하고 어린 시절부터 갈망해 오던 판소리를 시작했다. 

어머니 얘기로 5~6세 때 혼자 놀면서도 일인 5역을 하면서 놀더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고 할 만큼 남달랐던 선생은 처음 “쑥대머리”를 시작으로 소리의 외길 인생을 걷게 됐다.

결혼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78년 조상현 선생을 만나게 된다. 잠실 장미상가에 관인1호 경성국악학원인 판소리학원을 열고 14년을 배우면서 가르치는 열정을 쏟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꿈을 안고 92년 성남에 터를 잡고 공기 좋은 남한산성에 집 한 채를 마련하고 2년 동안 남한산성 소나무 밑에서 하루 종일 소리에 매진했던 지난날의 열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모란에 학원을 열고 후학에 힘쓰면서 명창대회 준비를 했다. 제자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 비가 쏟아지는 오랜 시간 동안 명창부 30분 소리를 위해 부채를 들고 수백 번 수천 번 학원 가운데 기둥을 돌며 정상을 향한 외롭고 고독한 혼자만의 싸움이었다고 회고한다. 드디어 1999년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이수자인 선생은 98년 6월 성남에 판소리보존회를 설립한다. 2000년 1월 1일 ‘사랑스런 성남’ 창작 발표를 하게 되고, 2001년 10월 판소리와 재즈와의 만남을 통해 성남시민들에게 국악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고, 2002년 4월 성남시민회관 대강당에서 5시간 반 동안 심청전 완창을 해 낸다. 

2003년 창극 춘향전 발표회와 아름방송에서 ‘우리가락 좋을시고’를 방영하면서 지역문화 발전과 판소리 인재육성에 지대한 공을 쌓게 된다. 

이제 성남의 명창 문 선생은 판소리의 묘를 살려 ‘님의 침묵’을 판소리로 만들어 발표하고, 금곡동 산 현장에서 ‘봉화대’ 노래를 창작해 판소리로 발표하고 ‘삼학사’를 창작 중에 있다. 

해마다 10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성남판소리 큰잔치를 통해 지난해는 104명의 제자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올 10월에는 120명의 제자들이 단가 ‘방아타령’을 오픈소리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충·효·열·우애가 기본덕목으로 들어있는 판소리는 보석 중에 다이아몬드구나! 판소리로도 사람을 치료할 수 있구나! 판소리에는 삼강오륜이 들어있구나!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나니 더 큰 깨달음을 했다”는 문효심 명창은 소동파가 쓴 단가 적벽부, 방아타령, 금강산타령, 심청전 등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며 국악의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