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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을 추억하다(9) 그때 그 시절, 그들의 문화 들여다보기

  • 관리자 | 기사입력 2013/10/23 [13:3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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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언니 오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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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다운받아 영화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요즘 아이들. 디지털 문화의 우리 아이들과 달리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시대인 70~80년대 우리의 언니 오빠들 모습은 어떠했을까?

‘쫀드기’, ‘달고나’, 판박이가 들어 있는 ‘롯데 왔다껌’, ‘비둘기표 동아연필’, ‘후지카 곤로’, ‘엑슬란 치마’, ‘카시미롱(캐시밀론) 이불’…. 왠지 모를 푸근함에 저절로 가슴이 열리는 이 단어들 한편으로 ‘퇴폐풍조, 장발단속, 고고, 통행금지’란 말도 함께 나열된다.

“야전에 빽판을 걸어 놓고 신나게 고고를 추며 놀았다”는 아저씨. “야전은 중고 전축인데, 독수리표 전축이 나오기 전 월남 갔던 파월장병들이 하나씩 들고 온 것이었을 거야. 오아시스나 지구레코드 회사판은 비쌌고 주로 빽판(불법 복제품)을 이용했지.” 

이모님이 중앙시장 근처에서 술집을 경영하셨다는 초로의 신사는 “나팔바지, 장발에 선글라스 끼고 빵집에서 단발머리, 갈래머리 그녀를 만났으며, 음악다방(중앙동 돌 다방)에서는 DJ에게 클래식 ‘노예들의 합창’을 신청해 놓고 느낌 아는 표정으로 분위기 띄우며 감정을 잡곤 했다”고 한다. 거리에서는(지구·오아시스) LP판을 파는 레코드 가게에서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팔바지에 빵집을 누비던 오빠들이나 언니들도 있었지만 그때 그 시절, 산업현장(성남 공단)의 여공이나 남의집 가정부, 아니면 버스(경기교통) 안내양으로 일하면서 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주거나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던 언니도 많았다.

그 언니들이 이뤄낸 경제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던 시절. 극장 앞에 서서 애오라지 동전 두 닢뿐인 주머니만 만지작거리던 여드름쟁이는 가끔씩 영화관(성남·제일·동영·중앙)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고, 경양식 집에서 칼 잡는 방법과 수프 먹는 방법을 겨우 배운 실력으로 허세도 부렸다.

“내릴 분 안 계시면 오라이~” 하던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 한쪽을 비질하듯 밤거리를 누비던 이는 “버스회수권을 모아 짜장면(만복당) 한 그릇과 바꿔 먹고, 동시상영 영화 두 편을 보고 귀가하면,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오는 줄 알고 어머니가 챙겨 주시는 간식은 미안한 마음에 달지만은 않았다”고 추억한다. 이 회수권은 나중에 토큰으로 바뀌었고, 그 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가을, 소중한 혹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서랍 속 깊이 간직했던 추억을 잠시 꺼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박경희 기자 pkh22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