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음반시장의 명맥 잇는다
디지털은 너무나 차갑다. 그러나 LP를 추억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원음이 포근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날로그로 돌아가기는 힘들지만 세월따라 환경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을 달래며 이범성 씨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좋아서 음반매장을 열고 40여 년을 성남에서 살아온 이범성(70‧상대원3동) 씨.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이사 갈 줄도 모르고, 이사 가서도 안 되는 줄 알고 살았다고 한다. 지난 1973년 상대원시장 입구에 ‘삼성전파사’라는 상호를 걸고 음반매장을 열었을 때는 주변에 집도 거의 없고 환경도 열악했던 시절이었다. 음악시장이 음반에서 음원이나 공연 중심으로 바뀌면서 60여 곳이 넘던 음반매장이 이제 두어 군데 남은 것으로 안다는 그는 성남 음반시장의 전성기와 소멸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원음전자’로 바꾼 이름과 30년을 함께해왔다. 도시개발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주변에 주택단지와 시장이 형성되고 공단도 들어섰다. 덕분에 지역경제도 활성화돼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졌고 그의 매장도 사람들의 편안하고 따뜻한 쉼터 같은 사랑방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매장에 들러 음악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고, 월급날이면 벼르던 음반을 구입하고 노란봉투에서 현금을 꺼내 음반 값을 치르곤 했다. 매장은 음반과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 혹은 구입한 물건을 바꾸러 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았고, 그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매장은 이제 그때를 추억하고 그들을 추억 속에서나 만나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5년 전 ‘원음사’, 지금은 ‘클릭미디어’가 됐다. 매장의 이름을 바꿔놓고 보니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는 그, 매장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때 진열장 전체를 가득 메웠던 LP판 대신 지금은 CD와 카세트테이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며 “세미클래식화해서 만든 제임스라스트악단 음악을 좋아하고, 아끼는 판만 몇 장 소장해서 때때로 듣는다”고 했다. 그 많던 PL판 중 200여 장은 단골고객인 사회복지사 청년에게 선뜻 내주었다. “오로지 매장 일에만 매달려 ‘정도’를 삶의 기본으로 알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그는 슬하에 딸 셋을 둬 손자손녀도 보고 다복하게 살고 있다. 그는 얼마 전 LP판의 신화, 시대를 초월하는 가왕 조용필의 ‘Hello’ 음반을 몇 장 구입해 놓았는데 찾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남한산성을 촬영해서 영상으로 만든 ‘남한산성 사계절’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매장의 대형TV를 통해 틀어준다는 그에겐 40년 이어온 매장도 지키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카메라에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산하를 담는 것이다. 칠순의 나이에도 목소리에 힘이 넘치는 이범성씨가 그의 꿈과 사라져가는 음반시장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라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란다.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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