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탄천주변과 율동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며 우리를 반겨주는 식물이 있다. 갈대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님프인 시링크스가 판(Pan)에 쫓기다가 갈대로 변신했는데, 판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그녀를 그리워하며 불었던 데서 갈대는 음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에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왕(Midas)의 비밀을 안 이발사가 구덩이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속삭이고는 흙을 덮고 후련해 했는데, 구덩이 위의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이 비밀이 누설됐다는 설화가 있다. 이런 설화에서 연유해 갈대는 ‘밀고’와 ‘무분별’의 비유에 사용됐다고 한다. 그런데 습지와 갯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갈대는 알고 보면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어린 순은 식용으로 사용하며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었고 이삭의 털은 솜 대용으로 사용했다. 성숙한 줄기는 갈대발․갈삿갓 등을 엮는 데 쓰이고, 또 펄프 원료로 이용한다. 한방에서는 봄에서 가을 사이에 채취해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갈대는 수질오염물질인 질소, 인을 흡수 및 흡착해 그것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그 결과 탁월한 수질정화능력을 가진다. 게다가 갈대숲은 갈대 줄기에 여러가지 풀을 이용해서 밥그릇 모양으로 둥지를 만들어사는 개개비와 같은 새들의 서식처로 생명을 품어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참 기특하다. 물가에서 바람에 맞서 살아야 하는 갈대는 바람에 대항하기보다는 바람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한 식물로도 알려져 있다. 바람이 일렁이는 물가의 갈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튼튼하면서도 바람에 잘 견딜 수 있는 기둥을 만들어야 하는데. 갈대의 줄기 속은 비어 있어 쉽게 바람에 꺾이지 않는 유연성을 가졌다. 이때 갈댓잎은 연약한 갈대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힘을 실어주기 위해 갈댓잎의 아랫부분은 길쭉하게 원통형으로 말려 갈대의 줄기를 감싸고 있다. 한편 질퍽한 땅은 모든 것을 썩게 만드는데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갈대는 줄기성분에 특수한 방수성분이면서 견고함을 얻을 수 있는 토양 속의 규소를 배합했다. 갈대의 잎에 손을 베거나 다리를 온통 긁혀본 경험이 있을 텐데 갈대조직의 규소성분이 갈대를 마치 유리와 같이 예리하게 만든 것이다. 거친 환경에 적응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니 갈대는 참 고맙고 지혜로운 식물이다. 탄천변이나 율동공원에서 이 계절에 늘 만나게 되는 갈대지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게 되는 이유다.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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