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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장원의 비결, 그들은 어떻게 수석을 차지했나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01/23 [14:4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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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0년 조덕순 문과장원급제 시권     ©비전성남
신학기, 새 출발의 시기다.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지금쯤이면 갈 학교를 정해놓고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고,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게 되는 사람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답안을 문득문득 떠올릴지도모를 일이다. 인생에 큰 시험이 수능이나 입사시험만 있는 게 아니니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차분하게 기다릴일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위인들도 수험생 시절이 있었다. 입신양명의 첫 관문이던 과거에 응시한 그들은 갈고닦은 기량을 쏟아낸 뒤 국가의 선택을 기다렸다. 출제자인 임금의 의도를 간파하고, 젊은이다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뽐내며 채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들이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
1690년 경상도 영양 주실마을에 사는 조덕순이란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한양으로 올라 왔다. 그는 도성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급선무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일종의 여론 탐문이었다. 문과 응시생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도성 안의 여론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도성 사람들이 한결같이 도둑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고 조덕순은 치안문제가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밤새 대안을 골똘히 생각했다. 시험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시험장에 들어간 조덕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국가와 위정자가 그때그때 부딪히는 현실의문제들이 시험문제가 되어 출제되었
으니 생물(生物)에 다름없었던 것이다. “신이 국도(國都)에 들어오던 날에 사람들에게 맨 먼저 지금의 제일 급선무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것은 오직 도적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전하의 대궐에 들어와서 전하의 물음을 받드오니 또한 오직 도적을 다스림이라는 물음이셨습니다.”(1690년 조덕순 문과장원급제 시권).
밤새 고민한 결과일까. 조덕순의 답은 한 차원 높았다. 그는 경찰력의 증강,법 집행의 엄정함과 같은 물리적 처방보다는 ‘교화’라고 하는 인정(仁政)을 통한 근본적 처방론을 강조했다.
“어느 시대인들 도둑이 없고 어느 나라인들 도적이 없으랴만, 그것을 다스리는 법은 세대마다 각기 같지 않습니다. 혹은 법을 엄격하게 하여 다스리는 자가 있었고, 혹은 교화를 행하여 그치게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신은 이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이 더 나은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仁)으로 백성에게 젖어들게 하여 스스로 교화되도록 하는 것이 어찌 임금 된 이가 먼저 해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1690년 조덕순 문과장원급제 시권)
과거는 현실이었고, 현실 문제에 귀기울였던 조덕순의 대응은 주효했다.그러나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처방만큼은 물리적 수단이 가지는 미봉책보다는 근본을 바로잡는 근원책을 제시함으로써 그는 장원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다.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