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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전통시대의 초학 교재 『천자문』 읽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03/23 [09:5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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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천자문 유일본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다. 왕실 천자문은 해서체의 한자 원문에 한글로 훈과 음을 달고, 여섯가지 색지(赤, 靑, 黃, 紅, 綠, 白)를 7회씩 반복해 전체 42장으로 이뤄져 있다. 장정과 종이, 글씨 등에 호사를 다해 묶은 책이다.
이 책은 왕실에서 행한 돌잔치에서 돌잡이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자문이 왕실뿐만 아니라 양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초학교육의 교재로 널리 활용됐음은 이미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요즈음에도 천자문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 옛 문헌 자료 중에서 천자문만큼 현대인에게 익숙하고 가까이 있는 자료도 드물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가 무제의 명을 받고 하룻밤 사이에 지어 올리느라 수염과 머리털이다 희어져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불렀다. 책 이름 그대로 1,000자의 서로 중복되지 않은 글자로 이뤄져 있다.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의 교육으로 『천자문』을 뗐다. 당시에는 글자 수가 1,000자인 줄도 모르고 읽었다. 6살부터 7살까지 1년 이상 읽은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식사 후 겸상을 갖다놓고 아버지와 마주앉아 『천자문』을 읽었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내가 따라 읽기를 수십 번 한 뒤에, 그날 배운 글자의 훈과 음을 나 혼자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공부가 끝났다. 하루에 8자씩 배우는데,공부시간은 30분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천자문을 한 번 읽어야만 밖에 나가 놀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빨리빨리 읽고 놀고 싶은 마음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읽곤 했다.
어린 시절, 훈장인 아버지로부터 사투리로 천자문을 익힌 필자는 대학 때 천자문의 끝 구절 ‘잇기 언(焉), 잇기 재(哉), 온 호(乎), 잇기 야(也)’의 훈에 대해 국어학적으로 알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버지가 ‘이끼’라고 읽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읽을 뿐이었다. ‘이끼’가 돌에 새파랗게 끼는 선태식물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입기(口氣)’를 ‘잇기’라 하고, 그것을 ‘이끼’로 읽은 것이었다. 앞 구절 ‘위어조자(謂語助者)’와 함께 풀이해 주기만 했어도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학자들에게 한자의 훈과음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느낀다.
한문 공부는 무모할 정도로 외워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외우는 이를 당할 수 없다. 어린 시절 한문을 익혀 놓으면 국어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장서각에 소장된 왕실 천자문의 형형색색 아름다운책장을 넘기며 왕실의 일원들이 돌잡이에서나마 천자문을 가까이 하길 바랐던 마음까지 읽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