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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나랏님, 제 억울함 좀 들어 주세요”

왕이 직접 듣고 해결 지시 ‘소통의 정치’ 실현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05/23 [13:4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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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국등록』 1628년(인조 6년) 7월 기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 비전성남
 
 
불통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고, 국민의 힘으로 이를 바로잡은 끝에 시작된 새 정부는 ‘소통’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다.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에서도 백성의 소리를 듣고 정치를 행하는 국왕이 이상적인 군주상이었다. 왕은 백성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해 제도화하고, 상언(上言), 가전상언(駕前上言), 격쟁(擊錚) 등을 다양하게 운영해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은 우선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관서에 해결을 요청하고,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사헌부, 거기서도 기각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국왕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민원이 급격히 늘면서 대리인이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막기 위해, 민원인은 3일 이내로 관에 직접 나와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게했다. 이러한 절차를 거친 상언은 승정원을 통해 국왕에게 보고됐다. 국왕은 사안별로 관련 부서에 보내 조사한 후, 다시 보고하게 했는데 그 기한은 5일을 넘길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신속한 보고를 요구했던 것은 백성의 억울함을 속히 해결해주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300년간의 군영일지가 기록된 군영등록569책이 소장돼 있다. 그 중 훈련도감 소속 군인의 상언도 기록돼 있다. 훈련도감의 군인 김유천은 아이가 없었는데, 어느 날 길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데려다 훈련도감의 군인으로 키웠다. 그는 두 번의 호란이 있었을 당시, 인조를 호위해 금군으로 승진하고 이후 수문장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의 관아에서 그는 원래 관노의 자식이었고, 그러니 다시 관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보를 받게 됐다. 그의 양아버지인 김유천은 훈련도감에 그의 아들이 노비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박이 계속되자 결국 인조에게 상언을 올린다. 인조는 훈련도감에 이 사안을 조사해 보고하게 했다. 훈련도감에서는 ‘이미 면천되어 수문장이 된 사람을 다시 관노로 삼을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물론 이렇게 민원인이 원하는 대로만 판결이 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상언 중에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국왕에게 올라가지도 못하고 폐기된 사례도 있었다.과연 상언의 몇 퍼센트가 국왕에게 전달됐는지, 국왕은 상언 중에 어느 정도나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는지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할 곳이 있고, 내 편이 돼 해결하려는 국왕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새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고, 모든 국정과제에 ‘소통’을 핵심 키워드로 내걸고 있다. 국민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과 함께 대화하는 ‘소통의 정치’를 진심으로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