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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대부, 양친회 초대 이사장 김경모 선생

“어려움에 처한 사람 돕는 일이 가장 숭고한 삶”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05/24 [07:1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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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요즘 성남을 ‘복지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70년대 초 만해도 서울 철거민들의 이주로 전체가 판자촌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곤한 계층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런 성남에서 ‘양친회’로 처음 복지사업을 시작한 사회복지의 대부, 양친회 초대 이사장 김경모(88) 선생을만났다. 소망재활원, 선생의 소박한 방안에는 옛 추억의 사진들로 가득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선생은 88세의 나이에도 타임지를 즐겨 읽고 있지만, 청력이 많이 약해서 아들 김병준 현 이사장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경모 선생은 1930년 함경남도 흥남시 서호리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독학으로 영어·일어·러시어를 공부해 18세에는 중학교 러시아어 선생이 되기도 했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혈혈단신 남하했다. 선생은 살아남기 위해 막노동은 물론 안 해본 일 없이 다 하다가 1955년 양친회 번역사로 취직했다. 이것이 양친회와 인연의 시작이었다.
양친회는 본래 종교·정치·인종을 초월해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한 국제 민간원조 단체다.양친회가 한국에서 복지사업을 시작한 것은 1953년 한국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임시수도 부산에 한국지부를 두면서 부터다.선생은 “양친회에 몸담고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이 정말 숭고하고 보람된 일이라는 거였다”면서 “그래서 이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한다. 선생은 그렇게 사회적 약자와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사업가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폴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1972년 양친회는 경제·사회 측면의 낙후지역인 성남(당시 광주군 동부면)에 무료탁아소와 무료진료소 운영을 시작으로 1974년 종합병원 건립을 위한 양친사회복지법인을 설립했다. 1977년 드디어 성남시 최초의 종합병원 양친회 병원을 개원했다.
“병원 개원 전에는 지역특성상 의사 구하기도 쉽지않았는데, 개원을 하고 나니 병원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환자도 많아서 병원 운영에 고충이 많았다”며 “병원 명을 무료진료 이미지를 갖고 있는 양친회병원에서 성남중앙병원으로 바꾼 것도 주민들의 진료 인식이 바뀌기를 바라는마음이 있어서”라고 동석한 김병준 이사장이 귀띔한다.
김경모 선생은 인터뷰를 마치며, 낮은 자리에 스스로를 두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을 가장 숭고하게 여기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얻은 답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살아 보니 약간 부족한 듯 여기는 것이 최곱디다.너무 없으면 비굴해지지만 부족한 듯해야 겸손해지고 부족한 듯해야 열심히 노력하게 되지요.”60여 년 사회복지를 위해 한 길만 걸어온 김경모 선생. 선생이 우리 지역의 어른으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란다.
양친회사회복지회는 성남중앙병원과 소망재활원,양친회 어린이집, 정성노인의 집, 양친회 아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정경숙 기자 chung09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