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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성남 역사 이야기 12

  • 관리자 | 기사입력 2009/12/24 [15:3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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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역사 속의 호랑이

2010년(庚寅年)은 호랑이띠 해이다.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나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이야기는 세 살 어린이도 아는 이야기다. 성남의 역사 속에는 호랑이와 얽힌 이야기가 몇 가지 전해온다.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은 이효백의 기백
조선 중기의 문신 송언신(宋言愼·1542~1612)은 상대원에 묘가 있었는데, 그는 명종 때 불교를 배척하고 승려 ‘보우’를 죽이라고 건의했다. 그는 30년간 선조 임금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바른말을 하기로 유명했다. 선조임금은 그의 늠름한 건의에 답(答)을 내리면서 ‘만대의 정론(正論)’이라고 했으며, 심지어 ‘용맹한 호랑이가 산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처럼 사람의 인품을 논하는 데에는 종종 호랑이에 비유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사람을 많이 해치기도 했다. 분당 석운동에는 성남시 향토유적 제8호인 이효백(李孝伯)의 묘가 있는데, 호랑이가 청량동에서 사람을 해쳤으므로 이효백이 군사를 거느리고 양주·광주 등지에서 잡았다. 또 선조 4년(1571)에도 광주에서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았고, 정조 임금 때는 진부(津夫) 유대금(柳大金), 남명계(南命戒) 등이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호랑이에 물려 죽었으므로 여러 가지 혜택을 내려 주기도 했다.


기우제, 전통 민속에 영물 호랑이 등장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는 기우제를 지낼 때 호랑이 머리를 물속에 넣어 제사를 지낸다고 했는데, 전통 민속에는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새해가 되면 이른 새벽에 닭 그림과 호랑이 그림 따위의 여러 가지 그림을 대문간과 창문에 붙여 나쁜 기운을 막았다. 중국에서는 물고기가 재물을 상징하므로 연하장이나 장식용 벽걸이에 많이 등장하고,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 복을 부르는 고양이 장식품을 하나 정도 가지고 있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이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도 싫어하고, 무서우면서도 우러러보았다.


호랑이는 神의 뜻을 전하는 까치의 심부름꾼
한명회와 호랑이에 얽힌 설화는 옛 조상들이 인물을 평가할 때 어떤 사고를 했는지 보여준다. 글방이 멀어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한명회 앞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한명회를 등에 태워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호랑이는 함정에 빠져있었다. 이에 한명회가 호랑이를 잡은 주인에게 돈을 주고 구해주니, 호랑이는 한명회의 품에 안겨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역사 속 인물과 관련한 설화뿐 아니라 산신도에서도 호랑이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백발노인이 쓰다듬고 있는 호랑이는 산신령의 사자로 상징되거나 산신, 산군으로 불러 신성시됐다. 또 까치 호랑이 그림이 있는데, 까치는 나라의 새이면서 길조다. 이 그림들 속에 호랑이는 대개 까치에게 골탕을 먹고 바보스런 표정을 짓거나 까치가 전해준 신의 뜻을 전하는 심부름꾼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보은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료제공 | 성남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정리 | 윤종준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