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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결초보은(結草報恩)‚ 강하고 질긴 풀, 수크령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10/23 [16:1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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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들풀, 탄천의 수크령     © 비전성남


수크령은 가을 길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강아지풀에 비해 훨씬 크다. 꽃이삭 생김새가 긴 브러시 모양으로 독특하고 보라빛을 띄고 있어 아름답다. 그러나 얕보면 안 된다. 잎이나 꽃대를 손으로 뜯으려다가는 손을 베이고 만다. 예리한 낫으로 강하게 내리쳐야 벨 수 있다. 줄기가 억세고 아주 질기다.

수크령이란 이름이 생소해 우리말인가 궁금해진다. ‘그령’은 그러매다(잡아매다, 묶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해 ‘그렁’을 거쳐 ‘그령’으로 변한 풀의 이름이다. 수크령과 비슷하며 꽃모양만 다른 그령이라는 풀이름 앞에 더 억세다는 뜻의 ‘숫’을 붙여 ‘숫그령’으로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수크령’으로 변했다.

억센그령이라는 뜻을 지닌 수크령은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결초보은은 풀을 묶어 은혜를 갚음, 즉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을 뜻하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긴 전혀 다른 두 유언 사이에서 고민하던 위과는 애첩을 순장(殉葬)하는 대신 다른 곳에 시집보내면서 “난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고 했다.

세월이 흐른 후 이웃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침략했을때 한 전투에서 위과의 군대가 적군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적군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위과는 그 틈을 타 공격해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 이 이야기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유래했다고 한다.

탄천변의 가을도 깊어간다. 무성했던 일년생 풀이 지고 다른 풀과 구별되는 강인한 아름다움으로 탄천변 수크령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고 있다. 내가 잊고 지내는 고마운 사람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