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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성남의 중요무형문화재(1)

  • 관리자 | 기사입력 2010/02/23 [17:1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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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이영희 명인

“가야금은 내 몸과 같고 가족이며 꿈”
오는 5월 27일 제자들과 국립국악원서 연주회 예정

가장 한국적인 음색을 가진 악기라는 평가를 받는 가야금. 그 가야금의 청명한 울림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경지를 펼치는 가야금산조의 이영희(73) 명인은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중 한 명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녀가 우리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시절을 보낸 군산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 지역 예인 김향초의 승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부터다. 

그 당시만 해도 군산의 부잣집에서는 잔칫날에 예인들을 초대해 다양한 국악으로 흥겨운 한마당을 펼쳤고, 어린 이영희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젖어 들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그 진한 핏속에 흐르는 끼와 재능을 숨기지 못한다. “그저 좋아서…” 승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바라춤에 이어 가야금, 양금, 단소까지 배우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그저 좋아서…”라고 답한다. 

그런 그녀가 본격적으로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이화여대 재학 중 국악을 취미로 계속하는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한 지인이 신청서를 대신 내준 중앙방송국(지금의 KBS) 주최 국악 콩쿠르에서 아쟁으로 1등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박헌봉 서울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중고교) 초대교장의 제의로 대학 졸업 후 서울국악예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과 국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교사로 재직하면서도 판소리 명창 박녹주 선생에게 단가를 배우는 등 국악 분야의 공부에는 끊임이 없었다. 1980년대 들어 학교를 그만 둔 그녀는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익히는 데 정진했고, 1991년 스승 김윤덕 선생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50여년을 가야금과 함께한 이영희 명인에게 가야금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가야금은 내 몸과 같고 가족이며 꿈이지요.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가야금을 하고 싶은 걸 보면 아마도 가야금은 내  팔자이고 운명이 아닌가 싶네요.”

이영희 명인을 ‘연습벌레며 완벽주의자’라고 제자 김승희(57․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전통예술고등학교 교사) 씨는 소개한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가야금 연주의 기능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론을 통해 체계적으로 소리 하나하나가 어떻게 오묘하게 변하는가에 귀가 열려야 우리 음악의 묘미를 알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지요.”

가야금 산조의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아직도 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영희 명인은 말한다.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하고 건강도 예전 같진 않지만, 내 가야금소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 귀는 열려 있으니 연습을 해야지요.”

지난 2월 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아이티 구호를 지원하기 위한 ‘국악인들의 희망 릴레이 콘서트’에 참여해 가슴 저미는 가야금 선율을 연주한 이 명인은 훌륭한 연주뿐 아니라 제자도 많다. 이수자만 20여 명, 전수자도 30여 명에 이른다. 해마다 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이영희와 제자’란 타이틀로 가야금 연주무대를 꾸미고 있는 이 명인은 오는 5월 2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난(蘭)의 그윽한 향기처럼 고결한 가야금 선율을 선보일 예정이다. 

취재수첩을 접으며 이 명인에게 가야금의 매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영희 명인은 “평생을 아무리 캐도 캐지지 않는 것이 매력”이라고 답했다.

정경숙 기자 chung09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