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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순 ‘분리된 도시의 삶 - 광주대단지 사건으로부터’ 展

기억해야 할 우리의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8/12 [14:0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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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성남중진작가전1. 이돈순 '분리된 도시의 삶 - 광주대단지 사건으로부터'     © 비전성남

 

2021년 ‘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을 앞두고 성남문화재단은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성남시의 생성을 주제화한 중진작가 기획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2020 성남중진작가전 첫 전시로 시각예술 이돈순 작가의 ‘분리된 도시의 삶 – 광주대단지 사건으로부터’展이 7월 24일~8월 16일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 이돈순 작가(배경작품은 '광주대단지 풍경 - 참외 실은 삼륜차')     © 비전성남

 

북에서 내려온 부모님이 충청도 외딴 바닷가를 떠나 1974년 자리를 잡은 곳이 수정구 신흥동 산꼭대기. 이돈순 작가는 그때부터 신흥동, 단대동, 태평동까지 성남 원도심 깊숙이 발을 딛고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그의 아내인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김은영 대표와 함께 ‘태평동 에코밸리커튼 프로젝트’로 한여름 태평동 골목 하늘을 수놓고 있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탄생한 성남. 성남의 50년, 이돈순 작가의 50년 모두 ‘이주’에서 시작됐다.

 

▲ 1971년 광주대단지 무허가 판자촌(사진 출처 - 성남시사 9권)     © 비전성남

 

1960년대 서울시는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하나로 정착지 조성을 통한 ‘이주 정책’을 시행하고,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관할지역인 수진리, 단대리, 상대원리, 탄리 일대를 광주대단지로 지정한다.

 

1969년 9월 1일부터 철거민 이주가 시작되고 서울시는 땅을 분양한다. 그러나 광주대단지는 전기, 수도, 하수도 등의 기반시설과 지역경제 대책이 전무한 허허벌판이었으며 이주민들은 천막이나 판잣집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이후 이주민들의 실상과는 상관없는 분양 가격 인상, 분양증 전매 금지, 토지대금 일시 상환, 세금 독촉 등 서울시와 경기도의 일방적인 행정이 이어진다.

 

주민들의 항의와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만나겠다는 서울시장이 그 약속을 어기자 주민들은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다. 성남출장소 1동이 불타고 시영버스, 경찰차가 파괴되는 등 시위가 격해지자 서울시는 주민투쟁위가 내놓은 협상안을 수용하고 시위대는 해산한다.

 

▲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사진출처 성남시청)     ©비전성남

 

8월 1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새로운 도시계획이 확정되고, 이후 광주대단지 일대는 성남시로 승격된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검거된 22명의 주민은 징역 2년 이하의 선고를 받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은 난동, 폭동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아픔이 됐다.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분당(1990년대), 판교(2000년대 말), 위례(2010년대) 이주민들의 신도시가 성남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 '상처'. 굶주린 산모가 갓난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괴소문은 당시 광주대단지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 비전성남
▲ 창(窓)-산을 일구는 사람들. 1971년에 지어져 현재 철거 중인 주택의 방범창을 이용했다.     © 비전성남

 

이돈순 작가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당시의 현장 사진과 신문기사, 문학작품 등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못 그림과 하반신의 인체 군상들, 영상과 소리, 오브제 설치작업으로 형상화했다.

 

▲ 못 그림(칠정회화) 작업과정     © 비전성남

 

못 그림(철정회화鐵釘繪畵)은 이 작가만의 작품 세계로 합판의 뒷면에 못을 박아 앞면으로 돌출시킴으로써 반전 또는 전복의 형식을 구사한다.

 

▲ 광주대단지의 항거 - 배 고프다 직장 달라     © 비전성남

 

만나러 오겠다는 서울시장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주민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또 속았다. 내려가자!” 외치며 광주대단지 사업소로 몰려갔다. 손에는 곡괭이, 삽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이 작가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 『시민불복종』에서

 

▲ 시민불복종 -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 비전성남

 

광주대단지 사건은 폭동도 아니고 난동도 아니다. 죽음으로 내몰리기 직전 살아남기 위해 불의에 저항하고 부조리에 맞섰을 뿐이다.

 

▲ 행위자들     © 비전성남
▲ 행위자들     © 비전성남

 

<행위자들>은 당시 구속된 22명의 모습이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반기를 든 힘없는 소시민들이 재판에 회부된 아픔을 조명한다. 22벌의 청바지들은 각기 다른 자세로 걸어 나오거나 무릎을 꿇었다. 당시의 상황과 아픔은 하반신에 풀처럼 솟아난 못으로 표현했다.

 

▲ 가리워진 길     © 비전성남

 

성남의 원도심은 50년도 안 돼서 다시 개발되고 있다. 이돈순 작가는 가림막으로 가려진 수정구 신흥동 철거 현장에 들어가 핸드폰 촬영을 시도했다. <가리워진 길>은 그 현장을 담은 영상이다. 저벅저벅 밟히는 유리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 가리워진 길     © 비전성남

 

“나는 내가 살아온 집과 도시, 서울이라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돼 강제 이주와 철거민의 역사로 시작된 성남 원도심의 지역들이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아 집단적 철거의 운명을 맞는 벼락같은 변화의 아이러니를 본다.” - 이돈순

 

▲ 이돈순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는 박윤제 학생 가족     © 비전성남

 

8월 8일 오후 2시 무렵 전시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을 때, 한 학생(박윤제·이매고3)이 들어와 부모님께 이 전시를 꼭 관람하시라고 했다며, 이 작가에게 부모님이 오시면 설명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 작가는 흔쾌히 약속을 했다.

 

박윤제 학생은 세 시간 뒤에 부모님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들었다. 박윤제 학생은 물론 부모님들도 그동안 전혀 몰랐고 처음 듣는다고 했다. 성남시민들은 성남의 시작인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박윤제 학생     © 비전성남

 

이 전시를 봤으면 좋겠다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다는 박윤제 학생은 당시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마음이 아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강제 이주의 부당함, 이주민들의 현실을 무시하는 부조리 모두 알아야 할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라고 했다.

 

▲ 작품 설명을 듣는 은수미 성남시장(오른쪽)   © 비전성남

 

8월 11일 전시를 관람한 은수미 성남시장은 “못을 이용해 표현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도시 생성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성남이고, 대한민국 역사가 성남의 역사이므로 시민 여러분과 공감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문화 콘텐츠 개발에 역점을 두고 노력하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 터전을 일구는 사람들     © 비전성남

 

이돈순 작가는 이번 전시는 성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예술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해보는 시도라고 한다.

 

“성남 원도심의 이주와 정주, 개인의 인권을 통째로 흡수하는 국가 권력과 경제시스템은 현재 우리 사회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동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장소: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808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전시기간: 2020년 7월 24일 ~ 8월 16일

관람안내: 무료관람/ 사전예약제를 통해 제한적 전시 운영(예약 - 성남아트센터 홈페이지)

관람문의: 031-783-8149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