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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이야기] 때를 기다리는 양반나무, 대추나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0/23 [12:4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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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붉고 단맛 나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키가 5미터 정도 자란다. 대추나무는 봄에 다른 나무들이 부지런히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데도 마치 죽은 나무처럼 느긋하게 지내다가 불현듯 때가 됐다는 듯이 연녹색 새순을 내민다. 그래서 조상들은 때를 기다려 잎을 내는 대추나무에게 양반나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잎이 나면 잘 보이지 않지만 대추나무에는 잎겨드랑이에 3센티미터가량의 제법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워질 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란 말을 쓰는데 아마도 잘 날던 연이 대추나무 가시에 걸려 나무에 매달려 버리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결혼식 폐백에서 시댁 어른들께 절을 올리면 시부모는 대추를 신부에게 던져주며 아들 낳기를 소망했다. 대추는 과일뿐만 아니라 약방에서 보약으로 많이 사용됐다. 흉년에는 구황식품으로, 전쟁 때에는 군량으로도 쓰였다.

이렇게 요긴했던 대추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 조상들은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했다. 정월대보름과 5월 단오에 대추나무 가지가 둘로 갈라진 틈에 돌을 끼워 두는 것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미신으로 여길 수 있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줄기 중간에 돌을 끼워두면 양분의 이동이 제한된다. 잎에서 만들어진 탄소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고, 영양 생장에 필요한 질소가 뿌리에서 만들어져 위로 올라가는 것을 줄여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대추나무는 재질과 씨앗이 단단해 떡메와 도장, 목탁, 불상 등 공예품 재료로도 쓰였다. 조상들은 모질고 굳은 사람을 대추나무방망이라고 불렀고 키가 작고 빈틈없이 야무진 사람을 두고 대추씨 같다고 표현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도장을 새기면 나쁜 것을 몰아내고 행운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 값이 높았다.

대추로 만든 음식으로는 약식, 대추밥, 대추전병, 대추차 외에도 조란(曺卵)이 있다. 대추를 쪄서 씨를 빼고 체에 걸러 꿀에 반죽해, 밤가루를 꿀에 절여 만든 소를 박고 다시 대추만한 크기로 빚어 잣가루를 묻혀 만든 것이다.

올해는 여름의 많은 비와 태풍으로 다른 해에 비해 과일값이 비싸다. 그래도 붉게 익은 가을 대추를 채 썰고 꿀에 절여 향기 좋고 맛 좋은 대추차를 만들어 겨울을 준비하고, 손이 많이 가지만 조란 같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