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생태 이야기] 크리스마스 나무, 호랑가시나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1/24 [11:01]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나무 중에 호랑이 등 긁기에 쓰였다는 재밌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호랑가시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나무들은 초식동물로부터 어린잎을 잘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가지는데 호랑가시나무는 잎 가장자리를 변형시켜 대항한다.

어린 호랑가시나무 잎은 오각형이나 육각형으로 모서리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다. 아무리 튼튼한 입과 이빨을 가져도 사방으로 가시가 돋아난 어린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먹지 못한다.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도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가시 있는 잎에다 문질러 댄다는 뜻에서 생겼다고 한다.
 
전남 완도 지방에서는 호랑이 발톱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나무의 잎이 얼마나 억센 가시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키가 자라면서 잎의 가시가 차츰 퇴화하고 잎끝의 가시 하나만 남겨둔다. 초식동물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진화한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잎 표면이 윤이 나고 반짝이는 호랑가시나무는 암수가 다른 그루인데 가을에 붉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암그루다. 한겨울에 열리는 열매는 작은 새의 중요한 먹잇감이 된다. 호랑가시나무는 그릇과 체스 말을 만들거나 장식용 상감 세공에 이용된 밀도 높은 나무다. 가시는 동물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울타리에도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서양에서 호랑가시나무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을 지닌 나무다. 호랑가시나무는 holly tree로 불리는데 태양의 영원한 축복을 받은 나무로 신성하게 여겨졌다.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집안을 장식하면 좋은 신들이 그곳에 머물러 보호해 주는 것으로 믿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흔히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붉은 열매가 환한 촛불과 곁들여진 그림으로 자주 등장했고 호랑가시나무를 크리스마스 나무라고 불렀다.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는 십자가에 못 박힌 날 예수가 흘린 피를 상징하고 뾰족한 잎은 예수가 죽기 전 머리에 썼던 가시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그리스도의 가시’라는 뜻의 ‘christdorn’이라고 한다.

중세 애주가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는데 호랑가시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면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퍼브(pub) 바(bar) 등으로 불리는 수많은 술집이 ‘홀리(holy)’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앞날을 내다보는 준비’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어려움의 극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겨우살이와 호랑가시나무를 함께 상대에게 보내면 그것은 ‘준비를 잘해서 어려움을 이겨내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은 잘 마무리하고 2021년의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