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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조선시대 부신(符信) 출납 장부 『명소호부밀부책(命召虎符密符冊)』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2/23 [16:0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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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수록된 명소(命召)·호부(虎符)·밀부(密符)     © 비전성남

 
조선시대 부신(符信)은 국왕이 대신과 장수(將帥) 등을 긴급하게 부르거나 지방의 군사지휘관에게 병력을 동원하는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였던 신표(信標)다.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에서는 부신에 대해 ‘부(符)는 돕는다는 것을 말하고 양쪽이 서로 돕고 합쳐서 차이가 없는 것이며, 또한 돕는 것이니 신표를 돕는 바이다.(符之爲言扶也, 兩相扶合, 而不差也, 又輔也, 所以輔信.)’라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부신은 국왕의 명령이나 군사지휘관의 관직에 따라 명소(命召)·호부(虎符)·밀부(密符) 등이 사용됐다.
 
명소는 국왕이 삼정승·병조판서·훈련대장·어영대장·금위대장·포도대장 등을 긴급하게 부를 때 사용했다. 밀부는 국왕이 관찰사·통제사·절도사·방어사 등 지방의 군사지휘관에게 부임지의 병력을 동원할 때 사용했다.
 
명소와 밀부는 산유자(山柚子) 나무로 만들고 모양이 원형이며, 중간을 나눠 좌측은 국왕이 보관했고 우측은 해당 관원에게 내려줬다.
 
명소는 앞면에 수취하는 관직을 기재했고, 밀부는 제 1부에서 제45부까지 숫자로 표시했다. 명소와 밀부의 뒷면에는 국왕의 서명인 어압(御押)이 기재돼 있어 선대왕이 승하하고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면 명소와 밀부를 새로 제작했다.
 
호부는 호랑이 모양이며 무위영·친군영·총어영 등의 대장을 긴급하게 부르거나 병력을 동원할 때 사용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이러한 부신의 출납을 상세하게 기록한 『명소호부밀부책(命召虎符密符冊)』이 소장돼 있다. 『명소호부밀부책』은 1888년(고종 25)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명소·호부·밀부에 대해 반출하고 반입한 내역을 수록한 장부다.
 
『명소호부밀부책』에서 부신을 반출할 때 기재 방식은 제1행에 간지(干支)·월·일의 순서로 반출한 날짜를 기재했다. 제2행에는 반출한 해당 부신을 기재했는데, 밀부의 경우에는 밀부의 숫자를 기재했다.
 
제3행에는 부신을 반출한 관원을 ‘우일척(右一隻)·관직(官職)·신(臣)·성명(姓名)·친수(親受)’로 기재하고, 제4행 하단에 부신 반출을 담당한 승지가 ‘모승지(某承旨)·신(臣)·성명(姓名)’으로 기재했다.
 
이때 부신을 인수인계한 해당 관원과 담당 승지가 성명 아래에 직접 착명(着名)을 해 서로 확인했다.
 
부신을 반납할 때 기재 방식은 먼저 승정원의 주서(注書)가 반출 기록에 선으로 둘레를 그려 표시하는 묵권(墨圈)을 했다. 이어서 제4행 상단에 ‘간지·월·일·환납(還納)’을 기재하고, 제5행 하단에 부신 반납을 담당한 승지가‘모승지·신·성명’을 기재하고 그 아래에 착명했다.
 
『명소호부밀부책』에서 부신을 수취한 관원과 담당 승지의 착명을 제외한 모든 기재사항은 승정원의 주서가 작성했다. 이로 인해 부신을 인수인계할 때 『명소호부밀부책』에 잘못 기재하거나 묵권을 잘못한 경우 해당 주서를 처벌했다.
 
명소·호부·밀부는 국왕과 군사지휘관 사이에 군사권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중앙에서 지방의 군대를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데 사용됐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명소호부밀부책』을 통해 부신의 반출과 반입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운용했다.




노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고문서연구실 연구원     © 비전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