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장서각 산책]극비의 암행어사 봉서(封書) 복사본이 4건이나?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1/24 [21:46]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한국학중앙연구원에는 도서관이자 박물관이며 전국 각지 고문헌을 수집 정리하고 전시하는 장서각(藏書 閣)이 있다.
 
그간 2건의 국보와 10건의 보물을 비롯해 10만여 점의 고전적을 시골 옛집의 다락방에서 발굴해 120권이 넘는 《고문서집성》을 출간해 세상에 내놓고 있다.
 
2020년 초 한 집안에서 수집해 온 고전적 더미를 장서각 1층 고전적 정리실에서 분류 정리하던 중이었다.
 
수집된 고전적은 우선 고문서, 고서, 유물로 대분류한 다음 고문서는 교령류(敎令類)·소차계장류(疏箚啓狀類)· 첩관통보류(牒關通報類)·증빙류(證憑類)· 명문문기류(明文文記類)·서간통고류(書簡 通告類)·치부기록류(置簿記錄類)·시문류 (詩文類)·외교문서(外交文書)·기타(其他)로, 고서는 경(經)·사(史)·자(子)·집(集)으로 중 분류하고 있다.
 
낱장의 고문서라 할지라도 시간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한눈에 보고 어떤 문서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앞뒤로 2줄 정도씩은 봐야 대강이나마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한 문서를 집어 들었는데 봉투까지 갖추어진, 반듯하게 쓰인 비교적 큰 문서였다.
 
대다수 고문서가 그렇듯이 제목이나 누가 누구에게 언제 보낸 것인지 앞뒤에 아무 단서도 없이 ‘호서일로(湖西一路)’로 시작해 ‘타읍하론(他邑何論)’으로 끝나는 문서인데, 그래도 중간에 ‘栍邑[찌로 뽑힌 고을]’이라고 별도로 적혀 있어 뭔가 국왕이 고을을 조사하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겠구나 싶었다.
 
다시 수십 장의 문서를 1차 분류했는데, 또 ‘湖西一路’ 로 시작되는 조금 작은 문서가 나왔고, 얼마 뒤 다른 수집 상자에서 손바닥만 하게 책처럼 묶인 ‘湖西一路 ……’라는 문서가 나왔다.
 
같은 내용의 문서가 한 집안 에서 여러 건 나온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놀랍기도 했거니와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 1799년 봉서_家藏本(36행)     © 비전성남


그 문서는 1799년(정조 23)에 정조가 부수찬 신현(申 絢)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내려보내면서 흉년이 든 아산, 평택 등 고을의 세금 감면과 구휼 배정, 번상(番上) 비용, 소의 도살 금지 및 그에 따른 아전의 농간 문제 등 백성들이 고통받는 원인들을 잘 조사해 오라고 지시 한, 일종의 명령문을 넣은 봉서(封書)였다. 
 
봉서란 특히 수령의 비리를 비밀리 캐내기 위해 암행어사에게 은밀하게 내린 업무 지시서이자 임명장을 봉투에 넣고 밀봉해 준 문서다. 
 
당장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겉봉에 담겨 있는 단정한 정자로 쓰인 필체의 것이 원본이고, 조금 작은 또 다른 것은 그 집안에서 베껴 써서 소장하던 것이고, 손바닥만 한 것은 암행어사의 임무 수행을 위해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한 집안에서 같은 내용의 문서 3건이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인데, 이 내용을 계속 분석하며 검색하던 중 또 다른 등서본(謄書本)이 바로 장서각 2층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문서는 국왕이 신하에게 내린 문서의 내용을 확인 기록하기 위해 현재 대통령 비서실격인 승정원에서 베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전율이 오는 순간이었다. 
 
222년 전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한 건의 극비 원본 문서가, 그 집안에서 보관하기 위해 베껴 놓은 1건, 암행어사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매 속에 넣고 다닌 1건, 궁궐에서 부본(副本)으로 보존하기 위한(그래서 장서각으로 전해졌던) 1건, 도합 4건의 문서가 한 자리에서 확인된 보기 드문 경우다.
 
한 점으로 시작된 극비 문서의 복사본이 4건이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도 흩어져 있던 것들이 수백 년이 흐른 후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고문헌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관리하는 장서각 고문서 조사수집 정리 사업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여러 사본의 기록이 존재하기에 정확하고 청렴한 업무수행이 가능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잘못 기록된 사실의 추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