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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 시절을 이야기하다] 조영이 성남수정새마을금고문화원장

광주대단지 목재상으로 맺은 인연, 지역 발전으로 이어져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2/24 [15:22]

▲ 성남수정새마을금고 문화원조영이 원장     © 비전성남

 

▲ 1974년 성남시청 개청 1주년기념 이재덕 성남시장 감사장     © 비전성남

 
성남수정새마을금고문화원 조영이(88) 원장이 몸담고 있는 문화원 집무실엔 경기도 성남출장소 이재덕 소장이 수여한 50년 된 감사장이 벽에 걸려 있다.

1974년 7월 1일 성남출장소는 성남시로 승격됐고, 출장소장이 성남시장직을 이은 듯 조 원장의 책상 위에는 성남시 개청 1주년 기념으로 받은 이재덕 성남시장의 감사장이 놓여 있다.
 
조 원장의 사무실 벽면과 책상 위엔 그동안 성남에서의 행보가 감사장과 표창, 그리고 기록에 의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약 50년 전, 흐린 기억 속에는 먹고 사는 사람보다 굶는 사람이 더 많았다

조영이 원장이 광주대단지 시절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살다가 광주대단지 소식을 듣고 목재상을 해야겠단 생각과 행동이 이곳과 인연으로 닿았다. 목재상을 하려고 광주시 중부면 탄리(현 태평4동) 국제시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50년 넘게 지난 일이다보니 기억이 흐려 당시의 정확한 나이보다는 30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먹고 사는 사람보다 굶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마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거지와 도둑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 이후 성남출장소 때도 사람들의 형편은 여전했던 걸로 기억된다. 목재상 운영 몇 해 후, 현재 이마트 자리에 성남출장소가 들어서고 출장소 한편에 구내식당을 지어 10년 동안 운영한 후 출장소 측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구내식당 운영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뛰어들었다.”

광주대단지 투기 붐으로 인해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삶
 
광주대단지는 서울시 철거민 이주 목적으로 조성된 곳이지만 광주대단지를 두고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이 일었고,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각기 다른 지방색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고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같은 지역을 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향우회가 형성됐다.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계기도 됐지만 조금 잘사는 사람들이 모여 어렵게 사는 고향 사람을 돕고자 하는 깊은 속내가 있었던 것 같다.
 
전북 부안군 줄포면을 고향으로 둔 조 원장 또한 향우회를 조직해 이끌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운 향우들을 발굴해 굶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공부하고 싶은 이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하며 돕기 시작했다.

조 원장의 지역 발전을 위한 행보는 계속됐다. 자연보호, 체육·문화발전, 성남시 초대 시의원, 성남수정새마을금고이사장(20년 역임)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했다.
 

▲ 1970년대 광주대단지 모습     © 비전성남


성남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어려운 시절 함께한 사람들
 
조 원장은 “나에게 성남은 제2의 고향이다. 성남시 태동 전에 들어와 반평생을 살며 그 어렵던 시절을 이겨내며,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했다. 지역 발전의 선두에 서서 일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에 아깝다는 생각 없이 지역에 환원하며 살아왔다. 성남시의 역사 속의 삶은 누구나 그랬던 것 같다. 함께 뭉쳐야 살 수 있었고, 서로 나누고 응원해야 살아질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부상조하며 견뎌왔던 것 같다. 암울했던 광주대단지로부터 살기 좋은 성남시로의 도약에는 그런, 우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라고 성남을 회고한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