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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출가하는 딸을 향한 사대부가 父情의 기록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4/21 [16:0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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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초학. 1797년(정조21)에 김종수가 그의 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계녀서. 국문 필사본. (ⓒ개인소장)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비전성남

 

예나 지금이나 금지옥엽으로 키우던 딸을 혼인시키는 일은 부모에게 큰 자랑이면서 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아버지들도 그 부담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나 보다.

 

장서각에서 수집한 사대부가의 고서 가운데는 혼인을 앞둔 딸에게 아버지가 써준 계녀서들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암 송시열의 『우암계녀서』가 있고 병곡(屛谷) 권구(權榘)가 쓴 『내정편(內政篇)』이 있고, 청송(聽松) 김종수(金宗壽)가 쓴 『여자초학』 등이 있다.

 

모두 출가를 앞둔 딸을 위해 아버지가 써준 책인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딸을 배려해 한글로 적었다.

 

이 중 1797년(정조21)에 학봉 김성일(金誠一)가의 9대손인 김종수가 출가를 앞둔 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여자초학』은 다른 계녀서들과는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이 책은 마치 딸을 앞에 앉혀두고 대화를 나누듯이 출가해서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조목조목 적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이고 관념적 표현은 드물고 일상적인 삶에 도움을 주는 구체적 사례들이 기술돼 있다.

 

이 책도 다른 계녀서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여성들의 필수 덕목인 “화순(和順)”, 즉 화목과 순종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여자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보다 남의 의견을 듣고 따르는 것이 덕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화목과 순종의 덕은 가부장적 가족 운영에서 혼인과 동시에 시댁에서 평생을 헌신해야 하는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청송은 “여자의 행실은 순함이 제일 행실이니 모든 일에 순하면 길하고 순하지 않으면 흉하니”라고 했고, 또 “부녀의 소견이 아무리 통달하여도 모르는 가장만 같지 못하니… 소소한 일이라도 가장에게 알게 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청송은 책의 중반부터 팔도의 풍물, 역사, 관직, 과거 등을 조목조목 기술하고 이어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절일(節日), 복제(服制), 육갑(六甲), 구구수법(九九數法) 등을 적어주었다. 팔도풍물에는 각 도의 물산, 대표 인물, 무역, 풍속 등이 적혀 있다. 물론 이때 모든 기술은 학봉 종가가 속해 있는 경상도에 집중돼 있다. 역사에 대한 기술에서는 유사 이래의 왕가 성씨를 기술하고 조선에서는 당시의 사색당파를 적고 남인은 서애(西涯), 미수(眉叟)를, 서인은 율곡(栗谷), 우암(尤庵) 및 명재(明齋)를 존숭한다고 했다. 당시 남인가였던 아버지가 출가하는 딸에게까지 자기 집안의 당색을 가르친 것이다. 다음으로 의성김씨 세계(世系), 조상의 기일, 현재 가족의 생년월일시 등도 적었다.

 

사실 화목과 순종만이 강요된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집 밖의 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정치적 식견이나 바깥세상의 일을 논하는 능력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청송은 출가하는 딸에게 이러한 지식들을 가르치고 싶었을까. 청송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부녀라도 고금(古今)을 모르고는 답답하기를 면치 못하는 고로 인물(人物) 현부(賢否)와 산천(山川) 원근(遠近), 풍속(風俗) 미악(美惡)과 물산(物産) 다교 (多交), 작위(爵位) 고하(高下)와 과거(過擧) 절목(節目)을 기록하니 이도 알아둘 것이니라.”

 

가부장적 종법질서가 지배하던 시대에 설사 소용이 없었을지라도, 자신의 딸만은 한 인간으로서 꼭 알았으면 하는 상식들을 가르쳐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조상의 세계(世系)를 적어주며 명문가의 긍지를 품고 혼인 생활을 당당히 헤쳐가기를 바라는 부정(父情)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이현주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책임연구원     ©비전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