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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꿈을 꾼다’

청년 예술가와 어르신들의 특별한 만남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11/05 [16:0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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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신흥3동 문화예술공간 창생공간 재미에 임절자, 문순금, 윤연희, 한화성, 문상우 등 다섯 어르신이 인생을 그림과 이야기로 펼친 우리는 다른 꿈을 꾼다_회상연극 프로젝트이 열리고 있다.

 

올해 5~10월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미술 전공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울고 웃으며 함께 만든 작품이다. 특별한 준비 없이 색연필과 종이로 풀어낸 삶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 문순금 '무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선생님. 열두 살 소녀 문순금이 아흔셋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요. 세월은 흘렀어도 아직도 소녀 순금이로 선생님 생각이 나고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 임절자 '마음지도'

 

평범하게 살아온 임절자이지만 나이가 먹어가니 탄생지(함경남도 원산시 송흥리 105번지)에 살아생전 꼭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언제나 이루어질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 문상우 어르신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천사여(아내 정영숙).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싶으면 당신이 꼭 꿈에서 보이드라고요. 꿈에서 깨고 나면 한없이 아쉬우면서도 그렇게 좋고 행복한 즐겁고 힘찬 날이 됩니다. 고마워요.”

 

박새하 학생은 태평동 복합예술문화공간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에서 마을에 오래 사신 할머니의 인생을 다른 세대들이 연극으로 재현하는 회상연극 프로젝트에 청년 세대로 참여하면서, 미술 작업도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지난해 과제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함께한 팀원들에게 회상연극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팀원들이 하기로 결정했다. 어르신들은 과제전 작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한 성남시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만났다.

 

▲ 우리는 다른 꿈을 꾼다_회상연극 프로젝트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이 그만두시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연극을 그림으로 변경하고 만남이 여러 번 연기됐지만,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림에 대해 알려드리며 정을 나눴다. 9명 학생들이 한 팀이 됐고 이중 어르신과 활동하는 학생들은 각자 어르신 댁으로 개별 방문했다. 팀원 모두 어르신들과의 미술 작업은 처음이었다.

 

▲ 한화성 '내가 좋아하는 것들'

 

어르신들은 인생의 장소를 그리면서 숨 가쁘던 삶을 이야기하고, 몸의 상처나 흉터를 그리면서 아프고 슬펐던 자신을 꺼내놓았다. 평소 그림을 좋아했던 한화성 어르신은 다시 갈 수 없는 고향의 금강산부터 일상의 풍경까지 좋아하는 것들을 실컷 그리셨다.

 

▲ 한화성 어르신의 자화상과 글

 

한화성 어르신은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잘 그리신다. 어르신과 함께 활동한 강도연 학생은 처음 방문했을 때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갑게 맞아 주시고, 마스크나 귤 이것저것 챙겨 주셔서 따뜻하고 감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못 만났을 때는 많이 기다리셨다고 해서 마음이 찡하고 울컥했다. 양가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 좌- 임절자 '몸지도', 우-윤연희 '몸 드로잉'

 

윤연희 어르신과 활동한 박새하 학생은 어르신들이 못 그린다, 못 그린다 하시지만, 옆에서 이야기하고 알려드리면 곧잘 그리시고 더 예쁘게 그리려고 하신다. 할머니가 자주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하셔서, 얼굴을 그려드렸더니 내가 이렇게 예쁘냐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 문상우 어르신과 함께 활동한 박새하 학생

 

그림그리기를 어려워하셨던 문상우 어르신에게는 박새하 학생이 아이들의 서툰 그림처럼 그려서 보여드리곤 했다. 문상우 어르신은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시며 눈물을 보이시기도 하셨다.

 

윗세대에게 반감이 있었던 박새하 학생은 이번 회상연극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그 반감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윗세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리는 형태 그대로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을 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한화성 어르신 작품 앞에 선 강도연 학생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서 어른들과 만남을 좋아한다는 강도연 학생은 나이를 떠나 타인의 삶을 공유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게 돼서 좋았다. 한화성 할아버지는 고생도 많이 하시고 한도 있지만 정말 긍정적인 분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다. 내가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 어르신들의 그림 그리기 영상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어르신들과 활동할 때마다 기록해둔 사진과 영상이 나온다. 색연필을 쥔 투박한 어르신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 임절자 어르신과 함께 활동한 김양현 학생

▲ 김양현 학생이 제작한 명상 영상

 

김양현 학생은 최근 요가지도자 자격을 갖췄다. 그 과정에서 세대 간 유전에 관심을 가졌고, 트라우마도 유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함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해답이 부모님 세대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새로운 명상을 시도했다. 앉든 서든 우리는 땅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맞닿은 땅이 어르신이나 부모님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담겼다며 명상을 촬영한 영상을 소개했다.

 

▲ 왼쪽부터 박새하, 강도연, 김양현 학생

 

단절 아닌 단절, 고립 아닌 고립은 코로나19와 관계없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 단절과 고립에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 청년예술가와 용기를 낸 어르신들의 우리는 다른 꿈을 꾼다_회상연극 프로젝트1113일까지 열린다.

 

▲ 한화성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창생공간 재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공원로349번길 14-1(신흥동 2815번지)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