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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산책] 우리가 몰랐던 궁 이야기, 『육궁고사』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3/23 [23:0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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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궁고사』 내지와 표지_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우리나라의 5대 궁궐이자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다. 사계절 아름다운 궁궐의 정취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국의 필수관광 코스로 방문한다.

 

특히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2010년부터 전문해설사를 통해 궁궐의 각 전각에 대한 해설과 함께 전통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궁들이 존재했다. 그 궁들은 후궁이나 왕자‧공주들의 생활공간 또는 이들이 세상을 떠난 후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고, 왕실 내부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대기 위한 곳이기도 했다.

 

이러한 궁들은 궁방(宮房) 또는 궁가(宮家)로 불리기도 했는데, 현재 청와대 권역에 속해 있는 ‘칠궁(七宮)’이 대표적인 경우다.

 

칠궁은 후궁 출신으로 임금의 생모가 된 7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을 시작으로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희빈 장씨, 순헌황귀비엄씨 등 후궁들의 사당이 한데 모여 지금의 칠궁을 이루게 됐다. 이 칠궁에서 보관하던 자료는 196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이관돼 보존되고 있다.

 

왕실 자료의 보고(寶庫)인 장서각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궁, 정확히 말해 궁방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한 권이 소장돼 있다.

 

책 제목은 『육궁고사(六宮故事)』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육궁은 수진궁(壽進宮), 명례궁(明禮宮), 용동궁(龍洞宮), 저경궁(儲慶宮), 본궁(本宮),어의궁(於義宮) 등 6개 궁방이다.

 

먼저 수진궁, 명례궁, 용동궁, 어의궁은 중궁전‧왕대비전‧동궁전 등 왕실 각 전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으며 임금의 행차, 혼례 등 왕실 행사에 인력을 지원하기도 했다.

 

저경궁은 위에서 소개한 칠궁에 해당하는 곳으로 선조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사당이며, 본궁은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용흥궁(龍興宮)을 가리킨다.

 

이처럼 책에 언급된 6개 궁방의 성격은 제각기 다르며 연혁이나 건물과 같이 궁방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수 있는 내용은 기록돼 있지 않다. 다만 각 궁방과 관련된 간단한 설명이나 임금이 내린 전교(傳敎), 임금이 지은 글인 어제(御製) 등이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수진궁은 본래 제안대군의 집이었다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각종 제사의 규모를 변경하는 것, 위패를 옮겨놓는 일과 관련된 전교가 적혀 있다.

 

이는 후사를 보지 못하고 일찍 죽은 후궁이나 왕자‧공주의 제사도 수진궁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성남 수진동의 지명도 수진궁에서 유래했다.

 

용동궁에는 임금의 글씨인 어필(御筆)은 없고 본래 용동(龍洞)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건물은 고(故) 심의진(沈宜鎭)이 예전에 살던 집이라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본궁에서는 숙종이 지은 ‘용흥구궁(龍興舊宮)’, 영조가 지은 ‘용흥잠저고정기(龍興潛邸古井記)’ 등 이곳과 관련된 임금의 글씨나 시문(詩文)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육궁은 5대 궁궐이나 칠궁과 달리 건물이 남아있지않기 때문에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사료와 고지도에 근거해 문화재 표지석을 설치한 덕분에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는데, 지금의 중구와 종로구 일대에 해당한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 빌딩과 수많은 자동차, 바삐 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종로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수진궁 터’, ‘용동궁 터’ 등 표지석을 마주하게 되면 장서각 수장고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을 『육궁고사』를 한번 떠올려보는 것이 어떨까.

 

이은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