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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호스피스 완화의료

최진호 혈액종양내과 분과장(성남시의료원)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9/01 [18:5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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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개원한 성남시의료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임종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수원에 사는 우리 가족은 3년째 뇌졸중으로 집에서 누워만 지내던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큰아버님댁에 도착하니 큰고모, 작은고모 등 온 가족이 할머니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도착하고 수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가 임종하셨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죽음의 현장이었던 것 같다.

 

6년간의 의대 과정을 마치고 5년간의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가 주로 배운 것은 어떻게 해야 환자를 더 오래 살리느냐였던 것 같다.

 

내과 레지던트 2년차 때였다.

 

재수를 하고 갓 대학에 입학한 20세 여자아이를 만났다. 재수하는 동안에도 배가 아팠지만 참고 공부하다가 대학에 입학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위암 말기로 판정받았던 아이였다.

 

여러가지 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 암 진행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통증 및 지속적인 구토로 입원하게 됐다. 아이 부모님의 헌신적인 간병이 있었으나 아이는 점차 악화됐고 결국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됐다.

 

2개월간의 그 과정을 함께하면서 아이를 낫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와 보호자 분들의 옆에 있어 주는 것이 그래도 의미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이 내가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의에 관심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의학이 발달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많은 생명 연장 장치들이 개발됐다.

 

어떠한 질병에는 아주 귀하게 사용되는 장치지만 회복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에게는 원치 않는 죽음을 맞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 대부분이 집에서 가족들 또는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지만 원치 않게 기계 호흡과 투석기 등에 의지한 채 가족들이 없는 중환자실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다가 임종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매우 훌륭한 편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어떤 제도에도 허점이 있듯이 말기암 환자 진료에 있어서도 그러한 면들이 있어 보인다.

 

수술 및 항암치료에 대한 의료적 수준은, 수십 년 전 암 환자들이 해외에 나가 치료받던 때와 달리 오히려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와서 치료받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할 만하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전국 암환자의 많은 수가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들로 몰려와서 수술 및 항암치료를 하게 되고 이러한 대형병원은 적극적인 수술 및 항암치료를 하려는 환자들만으로도 병실이 부족한 상황이다.

 

수술 및 항암 치료 등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상태가 되면 암으로 인한 통증 및 삶의 질 저하로 인해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더욱 절실한 상태가 되지만 현실은 대형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요양병원에 갔다가 하면서 양질의 완화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낮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수가와 고된 진료 업무로 인해 민간병원에서는 적극적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인구 90만 명이 넘는 성남시만 해도 아직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이 전무한 상태다.

 

필자의 할머니가 임종했을 40년 전과 현재의 사회 모습이 많이 바뀌어서 최근에는 집보다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들이 집이 아니라도 집과 같이 안락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환경에서 통증 등 여러 힘든 증상들을 잘 완화해 줄 수 있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이 점점 늘어나기를 소망해본다.

 

그곳에서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또한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를 잘 준비하는 곳이 되기를 더욱 소망해본다.

 

 

기고 최진호 혈액종양내과 분과장(성남시의료원)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의 신체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 사회적, 영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루어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팀을 이뤄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완화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서비스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