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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생명의 터전, 착한 공동체를 향하여

기고 김백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책임연구원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9/04 [13:3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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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구 운중동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본관

 

낭만적인 여행지 중의 하나인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에서 몽블랑이라는 봉우리가 제법 유명하다. 사계절 하얀 눈의 만년설(萬年雪)로 덮여서 오랜 세월 역사를 거치며 많은 신화와 전설을 낳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곳의 여행이 금지됐다. 왜냐하면 올여름 유럽을 덮친 폭염으로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산사태가 급격하고도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에 걸쳐 있는 거대한 지역이지만,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와 만년설이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실제로 올해 83일 이탈리아 마르몰라다산맥 빙하가 갑자기 무너지며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여름에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는다. 올해도 서울과 경기 일대가 물에 잠길 정도로 엄청난 물폭탄이 쏟아져 고생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의 원인에는 인간의 만행(蠻行)이 포함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많은 자연재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는 것뿐만 아니라 폭염과 폭우, 겨울에 갑자기 추위가 지속되는 이상한파(異常寒波)도 흔한 일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째 지구 전체가 감당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Co-vid 19)는 우리 자신의 일상생활을 억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장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한다.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문명의 위기들이 한꺼번에 닥쳐오는가?

 

더 있다.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보이스피싱(온갖 유형의 사기 전화)에 속지 않고 평안(平安)을 유지하고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불평등에 찌든 사람들의 존재론적 상실감을 조금이라도 살펴 공감하고 위로하는 넉넉한 인품도 닦아야 한다. 하루하루 생존하기에도 바쁜 사람들의 문화적 결핍에 재를 끼얹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남기도 어렵고, 조금 가진 것이 있다고 우쭐대지 않기도 어렵다. 일상적 삶을 위협하는 사회-문화적 모습들은 부지기수다.

 

풍진(風塵) 세상, 삭막하고 고단한 삶을 버티면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속된 말로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조조(曹操)가 말했듯이 술을 대할 때는 노래를 읊나니, 인생이 뭐 특별한 것이 있나?(對酒當歌, 人生幾何.)”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돈과 화려한 물건에 혼백(魂魄)이 휩쓸리도록 세뇌당하며 산다. 그래도 어려서 배운 윤리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와 가치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하기도 한다.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사람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적 지평(Big View)에서 볼 때, 눈에 보이는 화려한 물건들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덕성(德性)들은 모두 무상(無常)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우주적 지평이 아니라 세속적 감정이 앞선다. 그러므로 저 두 영역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난한 길이다.

 

요즘 세상의 자본주의 대중문화는 보통 사람의 혼백(魂魄), 즉 정신을 마비시켜 돈과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자 정교한 함정을 파고 덫을 놓는다. 이 함정과 덫에 걸리는 순간 허위의식과 소비의 노예가 된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도움이 절실한 주변 사람을 살피며 돕는 어진 마음을 지니면서도, 온갖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는 날카로운 지혜도 지녀야 한다. 지혜의 칼날 위에 선 채로 자비를 실천하는 삶은 쉽지 않은 길이다.

 

개인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인간성(Humanity)”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성은 마치 전쟁터의 교전규칙(the rules of engagement)”과 같이 인간을 끊임없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준다.

 

다양한 인생의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하는 지혜는 매우 값진 보물이 된다. 살아보면 알게 된다. 재물은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영원한 재산이 될 수 있다.

 

풀리지 않는 원한은 없고, 사라지지 않는 고통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연(因緣)의 관리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은원(恩怨)이 분명하되, 집착하지 않는 삶의 경지에 이른다면 곤고한 삶의 현장에서 심신이 덜 고달플 것이다

 

주역에 따르면, 세상은 본래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조화와 균형으로 운행된다. 이때의 조화와 균형은 차이와 갈등이 있어야만 가능한 기능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차이와 갈등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일구어 가는 데 필수적인 동반자다.

 

괴로운 어둠이 짙어야 행복한 광명(光明)이 더욱 귀한 줄 알고, 정의로운 행위로 상처를 입어야만 인격이 더욱 빛난다. 우리는 도둑질하면서 당한 상처는 추악한 흔적일 뿐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를 비방하는 말들이 언제나 넘쳐나도 무심하게 흘려버리면 그냥 사라져버린다.

 

돈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 착한 행위, 즉 무재칠시(無財七施)를 가르치신 석가모니의 말씀처럼, 따뜻한 미소, 온화한 말, 어진 마음, 부드러운 눈빛, 약한 사람 돕기, 어려운 사람께 양보하기, 힘든 사람에게 쉴 곳을 안내하기 등은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은 본래 불공평하다.(Life is unfair.)” 그저 어리석은 사람만이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며 주저앉는다.

 

우리의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아름다운 세상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터전으로서 착한 공동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선연(善緣)의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한다.”

 

요원(燎原)의 불길은 부싯돌에서 생기고, 산을 뭉개는 홍수(洪水)는 물방울에서 나온다. 우리의 작은 선행과 그에 따른 좋은 인연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오는 인연 (因緣) 막지 말고, 가는 인연 잡지 말자.” 자잘한 인연에 얽매이지 말되, 오가는 인연은 선행(善行)으로 대하는 것이 착한 공동체의 제일원리다.

 

▲ 김백희 책임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