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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성남 역사 이야기(3) 삼족오

  • 관리자 | 기사입력 2009/03/26 [13:03]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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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三足烏)’는 ‘해 뜨는 동방의 나라 조선’의상징으로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민중의 생활 속에 이어져 내려왔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주몽’ 등 역사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삼족오가 그려진 깃발이 고구려의 국기인 것으로 오해될 정도다.

‘삼족오’는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 세 개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다. 옛날 건국설화에서 보이는 고구려의 동명성왕 이야기,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그리고 김알지의 난생설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은 태양과 새를 통해 하늘의 뜻을 이어 받는 것으로인식했다.
하늘에는 매일 태양이 가로 질러 건너가고 새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태양과 조류가 관련된 얘기가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삼족오의 발이 세 개로 표현되는 것은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이므로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이 세 개라고 풀이된다. 그리고 숫자 3을 중요시해 신성하게 여기거나 천(天), 지(地), 인(人)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새나 태양이 관련된 신화는 세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지만 삼족오는 오로지 동아시아에만 널리 존재하는 특수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대 손환일 교수는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와 월중옥토(月中玉兎)가 있다”면서 “그러나 중국에서는 위진남북조를 지나 수·당 시대가 되면 산둥(山東)과 랴오닝(􆩚􆧑) 지역을 제외하고는 점차 소멸되는데, 이는 삼족오 문화가 원래 중국 하족(夏族)의 문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분당구 판교동 산 25-1번지에는 이 삼족오가 새겨진 조선 중기의 묘표가 있다. 이 묘표의 주인공 연성군 이곤(1462-1524)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정, 호는 녹창(綠窓)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 합격, 1492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을 보직 받았다. 이어 병조정랑, 사간원헌납, 사헌부장령, 장악원 첨정 등을 지내고 외직으로 황주·해주 목사, 밀양부사 등을 역임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공을 세워 분의정국공신이 되었고 예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1524년(중종 19) 가선대부로 품계가 오른 후 사망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춘추관 의금부사로 추증됐고, 연성군에 봉해졌다. 이곤 묘비의 관석(冠石)에는 특이하게도 앞면에 직경 17.5㎝의 큰 원 속에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삼족오를 새겼다.

판교 소재 이곤 묘표에 가장 오래된 삼족오 문양 
삼족오가 새겨진 묘비는 세 곳이 있는데 이곤의 묘비는 1559년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조선시대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양주에 있는 고려 말의 충신 변안렬(邊安烈)의 묘표 뒷면에 날아가는 모습으로 새겨진 것은 1571년에 건립된 것인데, 다리가 표현돼 있지 않다. 남양주에 있는 박운(朴雲, 1493-1562)의 묘표에도 삼족오가 새겨져 있는데 16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이곤 묘비의 것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곤은 중종반정에 참여한 인물이고, 박운의 부친은 중종반정의 일등공신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박원종이다. 이들 묘표에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새긴 것은 올바른 정치에 대한 사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삼족오가 의미하는 天地人의 조화와 선정(善政)의 의미는 지방자치 시대의 중요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연성군 이곤 묘비에 새겨진 ‘삼족오’ 문양은 우리 성남시민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자료제공 : 성남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정리 : 윤종준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