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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빨래방 풍경

이민정 | 분당구 서현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2/22 [16:2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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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 풍경
이민정 | 분당구 서현동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 한강도 얼고, 바다도 얼고, 온 동네가 얼었다.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겨울이라는 뉴스 보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시간들. 엊그제 통화한 동창 친구네는 보일러가 얼었다고 하고 친정엄마 옆집은 수도 계량기가 터졌단다.

남들은 다들 힘든데 나만 괜찮은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웬걸, 우리 집 세탁기도 꽁꽁 얼었다. 기기는 돌아가는데 배수를 할 생각을 안 하니. 아... 이건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속옷이랑 양말은 어떻게 처리한다고 해도 열흘 가까이 가족 모두의 빨래가 쌓였으니 걱정이 밀려왔다. 그때 불현듯드는 생각, 빨래방!

결국 양손 무겁게 빨래를 싸들고 동네 어귀에 있는 24시간코인 빨래방으로 향했다. 빨래방은 자취하는 이들이나 대형빨래가 필요한 이들만 가는 곳인지 알았는데, 추위 때문인지 그곳은 특별한 풍경이 벌어졌다.

다섯 개 남짓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자리 잡은 옆에는 약수터처럼 빨래 바구니들이 물통을 대신해 줄을 서 있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니, 친절한 한 아주머니 사용법을 알려 주신다. “동전으로 바꿔서 사용하시면 돼요. 세제안 가져오셨으면 저기 세제도 팔고요.”

신기한 세상. 난생처음 동전을 넣고 세탁기를 돌려봤다. 이젠 별걸 다 해보는구나. 사실 나처럼 처음 이곳에 오는 이들이 많아 보였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아빠도 있었고, 중년의 아주머니 두서넛 분이 와서 평생 이런 곳 처음이라며 기기를 작동하며 까르르 웃으시기도 했다. 고수(?)의 향기를 풍기는 이들은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또 다른 삶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1시간 남짓. 시간이 지나자 산처럼 쌓였던 빨래는 뽀송뽀송하게 건조까지 마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차곡차곡 개어 가방에 다시 쌓고 밖으로 나오니, 내가 지금 다녀온 곳은 빨래방인지 쇼핑몰인지 신기한 마음마저 들었다.

너무 추워서 정신없던 일상이 내게 준 선물.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가끔은 빨래하러 마실 가볼까 싶다. 그곳에서 만나는 인연, 이야기가 또 다른 느낌을 선물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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