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나의 아버지, 택시운전사 김사복 선생님

큰아들이 말하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 김사복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5/30 [13:01]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누적관객 1,220만여 명으로 역대 한국영화 13위를 달성한 영화 ‘택시운전사’,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의 취재를 도운 실존인물인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다. 영화 개봉 후 김사복의 아들을 찾아 더욱 화제가 됐다. 성남시민인 그의 아들 김승필(60)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성남시의 행사에도 참여하시고, 5·18 민주화운동 관련 행사들로 많이 바쁘시죠?

    

김사복 선생님(그는 아버지를 김사복 선생님이라 불렀다)의 소신이 세상에 전해지면서 저에게 역할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성실히 따르려고 합니다.

 
▲ 성남시청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사진전에서 설명 중인 김승필 씨의 모습     ©비전성남

 

이번에 성남시가 행사의 뜻을 잘 살려주셨어요.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소신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데, 은수미 시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미 법적으로 정해진 민주화운동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슴 아픕니다. 

    

저는 특정 정당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닙니다. 역사의 진실을 소신 있게 말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한 분의 아들로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김사복추모사업회도 만들었습니다. 

    

김사복추모사업회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아버님을 김사복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작년 3월에 발족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 제2, 제3의 김사복을 발굴해 그 유가족을 지원하며 인권학교 프로그램 등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 김사복 씨와 함석헌 선생     © 비전성남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 6.25 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사자가 계셨고, 이후에는 민주주의를 찾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 민주운동가가 계셨습니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초들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적극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됐는데, 그 대표적인 모습으로 택시운전사 김사복 선생이 그 민초의 모습을 대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대판 독립운동가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도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소신을 실천하기 쉽지 않은데 너무도 존경스러워 선생님이라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아버지로서 김사복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시며 “너무너무 착한 사람인데…” 하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차를 탈 때에는 꼭 문을 열어 주시고, 어머니를 끔찍이 위하셨어요. 아버지는 부드러우신 반면에 어머니는 강하셔서 제가 소크라테스 부인이라고 놀리곤 했답니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해보네요, 허허. 

    
▲ 1980년 5월 20일 광주 진입 시 긴장된 모습     © 비전성남
▲ 1980년 5월 20일 광주에 진입해 트럭에 탄 학생들을 발견하고 취재를 위해 다가서는 장면     © 비전성남

 

자식들에게도 정말 자상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셨어요.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 함석헌 선생님 『씨알의 소리』, 김형석 교수님, 안병욱 교수님 저서 등의 책을 즐겨 읽으셨지요. 초등학생인 저와 함께 산에 다니며 시를 자주 읊어 주곤 하셨고 저의 청년시절에는 정치 이야기로 갑론을박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 말씀이 다 옳았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보고 느끼고 판단하게 된, 올바른 세상의 모습을 아들인 저에게 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 외신기자들의 취재를 보조하던 김사복. 1973년 촬영     © 비전성남
▲ 1973년 취재를 보조하는 김사복 씨     © 비전성남

 

강원도의 명문고인 강릉상고 출신이신데, 참으로 박학다식하셨습니다. 일어는 웬만한 일본인보다 유창하셨고, 영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셨죠. 그런 이유로 외신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으셨습니다. 

 
▲ 김사복 촬영(광주YMCA 옥상)     ©비전성남

 

일본 NHK 기자인 히로세씨와는 가족처럼 지냈으며 많은 외신기자들이 자주 집에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을 통해 DJ납치 미수사건 등 여러 사건 등을 바로 다음날 알 정도로 저희 집은 좀 특별한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영화 ‘택시운전사’ 얘기를 좀 드리자면 영화의 위력은 정말 놀랍다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부친인 김사복 씨를 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인 만섭 씨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그 당시 힌츠페터 씨와는 세 번이나 함께 광주를 다녀오셨습니다.

    
▲ 1980년 5월 20일 광주 진입 시 군부의 총부리와 장갑차 앞에서 상황을 듣고 있는 사람들. 동그라미 가운데가 김사복 씨이며 힌츠페터가 찍은 사진     © 비전성남

 

5월 20~21일 1박2일 동안, 특별히 21일 군부의 사살이 있었을 때 그곳에 계셨으며 그날 밤 늦게 귀가하셔서 “같은 민족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 하시고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5월 22일 힌츠페터 씨가 동경에 필름을 전하고 3시간 만에 돌아와서 5월 23일 전쟁터와 같은 광주를 다시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 1980년 5월 21일 광주항쟁 취재 필름을 숨기고 탈출하며 군인으로부터 검문검색을 받는 장면. 함께한 독일 녹음담당기자인 독일인 헤닝루모르 씨     ©비전성남

 

그리고 27일 도청이 군부로부터 함락되고 28일 다시금 광주를  다녀오셨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5.18 힌츠페터 스토리』 등 두 분의 실제 모습이 제대로 실린 작품들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힌츠페터 씨의 사모님도 만나시고,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모님과는 TV프로그램에서 처음 뵀는데,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작년 5·18행사 때 힌츠페터 씨 묘에서 함께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천주교 신자(세례명-바오로)로서 현재 천주교 묘원에 계시는데, 앞으로 힌츠페터 씨와 함께 계실 수 있도록 광주로 모시려 합니다.

 
▲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씨  © 비전성남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사건으로 가정은 파탄 나고 그로 인해 가출한 많은 아이들이 생겼으며, 총상 또는 구타, 고문 등으로 불구가 된 분들,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분들이 아직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속히 진상이 규명돼서 민족의 화합을 이루는 그날을 간곡히 기원해 봅니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