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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역사, ‘공주’라 불린 사람들 – 이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시간

2019 평화통일시민공모사업 ‘성남, 통일을 품다’ 행사 개최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7/10 [13:1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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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영 교수의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     ©비전성남
 
“미군 위안부의 뿌리는 100년 전부터 잉태됐습니다.”

7월 6일, 성남시청 한누리홀에서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의 '미군 위안부의 감춰진 진실' 강의가 개최됐다. 성남여성의전화가 주최하고 성남시가 후원하는 2019 평화통일 시민공모사업에 선정된 행사다.

 

청주, 의정부, 수원, 안산, 안양 등 각 지역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강의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알 수 있었다. 

 

 

학부생일 때부터 미군 위안부를 인터뷰했고, 20년 이상 당사자를 지켜보며 미군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고 있는 이나영 교수.

    

그는 미군 위안부의 역사는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 이나영(왼쪽) 교수와 여성의전화 진경 대표     © 비전성남

 

우리나라의 기생은 일본의 공창과 달랐다. 당시 기생은 시·서·화·음률에 능한 예술인,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앞장섰던 애국자였다.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향화 선생도 기생이었고,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를 도우며 독립운동을 펼친 기생들도 많다.

    

일제는 일본의 공창 시스템을 도입해 기생제도를 변화시켰으며, 이는 해방 후 미군기지의 성 산업으로 이어졌다. 가난한 집 딸들이 좋은 곳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팔려가거나, 어려운 가계를 돕고자 허드렛일이라도 하려고 직업소개소를 찾은 소녀들이 모르는 업소에 끌려가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허위 구인광고에 속거나 납치된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기지촌에 발을 디딘 여성들은 “양공주, 양색시”로 불리며 성매매 산업 종사자가 됐다.

미군위안부를 보는 시각은 양가적이다. 미군 기지가 있는 동네에서는 이 여성들로 인해 지역경제가 살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 여성들을 천시하고, 기지촌 밖 사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여성들을 상대로 폭리(예컨대 식료품이나 의류비를 몇 배로 받는다든지 등의 일)를 취하기도 했다.

    

가족들도 여성들이 보내주는 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여성들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사망 후에는 장례도 치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 두 번째 판결     ©비전성남

 

국가도 이 여성들을 적극 활용했다. 법적으로 성매매가 엄연한 불법인데도 “민간외교관, 애국자” 등으로 치켜세우면서 국가가 성매매 산업을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적 성병관리, 불법 감금, 격리 수용 등 여성을 착취하는 인권침해 사례도 무수하다.

    

위안부 당사자들은 “무서워 도망치면 잡혀 와 매를 맞고 또 다른 곳으로 빚을 지고 팔려 가고… 그런 우리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부작용이 심한 페니실린을 검사도 없이 무조건 투여해 엄청난 고통으로 탈출하다 사망하거나, 페니실린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캐서린 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도 ‘고용된 성 노예’라며 ‘보편적 여성 인권과 인신매매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80년대부터 기지촌 여성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단체(의정부 두레방, 동두천 햇살 등)들이 생겨났다. 지금도 신체·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늙고 병들어 갈 곳 없는 언니들(활동가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언니라 부른다)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들과도 교류해 사회와 소통하며 비빌 언덕이 돼 준다. 

 
▲ 두 번째 판결의 의의     © 비전성남

 

2000년대 들어 여성 활동가들은 기지촌 여성들과 연대해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했다. 2018년 고등법원 2심 판결에서 “성매매 중간 매개 및 방조, 성매매 정당화를 조장했다는 부분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전시에서나 평시에서나 군대의 여성 성폭력 문제에 있어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국가는 가해자일 수 있어도 피해자이지는 않았다.  

    

“미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와 개별성·독특성 등의 차이는 있으나, 전쟁으로 인한 뿌리는 같다. 일본군 위안부도 낙인을 털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미군 위안부는 더욱 엄청난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있고, 성매매 착취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사회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가난과 멸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

 
▲ 강의 후 다함께 단체사진     © 비전성남

 

영화배우이자 평화운동가 오드리 헵번은 “인권문제를 정치화하지 말고, 정치를 인권문제화하자”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인권에 입각해 정의로운 해결을 해 나가는 일은, 우리 세대의 손에 넘겨지게 됐다.

 

동두천과 의정부 기지촌 평화여행 

    

이나영 교수의 강의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동두천과 의정부로 현장방문을 떠났다. 먼저 의정부의 두레방을 찾았다.

   
▲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 비전성남

 

두레방은 의정부 캠프 스탠리 기지촌에 거주하는 고령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상상담과 의료지원, 심리적 지지, 법률지원 등을 맡고 있는 여성들의 쉼터, 비빌 언덕이다. 기지촌 클럽 현장에서 직접 상담과 프로그램 홍보를 한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한국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이 된 태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이주여성도 돕고 있다.

    
▲ 의정부 두레방의 모습     © 비전성남

 

두레방의 김은진 원장은 “지방 검찰청에서 후원금을 전해 오기도 하고, 경기도 성평등기금 프로젝트로 상담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와 교류도 많습니다. 성남시에서도 공모사업으로 선정해 주시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 상가의 원더우먼 벽화. 위안부 여성들은 어쩌면 원더우먼을 동경했을지 모른다     © 비전성남

 

두레방이 있는 배벌(빼벌) 마을을 돌아본 참가자들은 동두천으로 이동해 낙검자수용소를 둘러봤다.  

 

낙검자수용소는 성병이 의심되는 여성이라 하면 검사도 거치지 않고 무조건 수용소로 끌려가 페니실린을 맞고 감금되는, 공포스런 곳이었다. 페니실린 과다투여로 사망한 여성들도 많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사망한 여성들은 인근 상패동 공동묘지에 뿌려지거나 무연고 묘지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낙검자 수용소     ©비전성남

 

“학과 단톡방에 성남시의 행사 공지가 올라와 참여했습니다. 저희 학과에서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데, 아직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알고 싶고, 기행에도 참여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 연행이라고 많이들 알고 있지만 미군 위안부는 착취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처했던 상황 등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꼭 참여하고, 저도 인식 제고에 기여하고 싶습니다.”(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남웅 학생)   

 
▲ 유일한 20대 남성 참가자 조남웅 씨     ©비전성남

 

“여성 폭력 분야의 교육도 듣고 자원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미군 위안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데 젊은 학생들도 기여한 바가 큰데요,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가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0대 박지영 참가자) 

 

성남여성의전화 강정아 소장은 “앞으로도 소외된 인권의 문제에 대한 강의와 현장방문 등을 꾸준히 개최해 다함께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저희도 늘 협력할 것이고, 관심있는 시민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 상패동 공동묘지. 언니들의 묘는 거의 무연고이고, 막대기를 꽂아 표시했다.     © 비전성남

 

상패동 공동묘지에서 평화기행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목,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올랐다. 부디 나비처럼 훨훨 날아 냉대가 무서워 찾지 못했던 고향집에도 가보시길,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하시길,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현장에도 가보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시간이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