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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불 막는 천연소화기, 방화수(防火樹)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1/23 [12:3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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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근정전 월대 계단 옆에는 청동으로 된 큰 원형 그릇인 드므가 있다. 화재를 대비해 물을 늘 채워두는 드므는 지금의 소화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드므에 가득 채워진 물에 화마(火魔)가 다가왔다가 제 얼굴에 놀라 도망가기를 기원하며 무서운 화재를 진압하는 드므를 설치했다.

이처럼 불을 끄는 수단으로는 언뜻 물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숲에는 불에 버티는 힘이 강해 화재를 막아준다는 나무, 방화수(防火樹)가 있다.

방화수는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이나 산림의 주위에 심는 나무다. 소나무, 측백나무, 아왜나무, 은행나무, 가막살나무가 방화수에 속한다. 방화수는 다른 나무들 사이사이에 여러 줄로 심으면 천연 방화벽 역할을 한다. 산을 근처에 둔 집은 방화수로 나무 울타리를 만들면 산불에 대비 가능한 것이다.대표적인 방화수로 꼽히는 아왜나무 잎은 크고 두꺼우며 많은 수분을 가지고 있다. 일반 나무들보다 수분이 풍부해 불이 났을 때 발열량이 적고 자연 발화온도도 높다.

또 일단 불이 붙으면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보글보글 거품을 만들어 놓는다. 거품형 소화기처럼 표면을 덮어서 차단막을 만드는 셈이니 불에 잘 타지 않는 것이다.

동백나무도 방화수에 속한다. 보물 등 23점의 문화재가 있는 해남 대흥사 외곽으로 동백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동백나무는 사철 푸른 잎이어서 화재 발생 시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절에서 필요한 동백기름도 공급하는, 대흥사에서 참 쓰임새 많은 나무였다.

강력한 환경적응력으로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하고 겨우 1년이 지난 뒤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가장 먼저 자란 은행나무도 방화수로 구분된다. 은행나무는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 강하다.이렇듯 방화수종식재는 다양한 숲 조성과 함께 재해에도 대비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둔다. 중요한 건물이나 집주변에 심은 방화수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화재에 대한 걱정이 늘 앞서는데 불에 강한 나무를 집주변과 중요한 건물주변에 심어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졌던 조상들의 지혜가 방화수에서 느껴진다. 또 불을 막아주는 나무가 있다니… 우리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나무에게 더 큰 고마움이 생긴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