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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민 독서릴레이 18 정소영 세계동화작은도서관장] 외로움을 넘어 빛으로 서다

빨려드는 이야기의 힘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5/26 [14:55]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 델리아 오언스 지음살림출판사 펴냄     © 비전성남
 
습지의 소녀 카야. 엄마는 카야가 여섯 살에 집을 떠났습니다. 형제들도 하나둘 모두 떠나고 열 살 무렵에는 사나흘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던 술꾼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카야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사무치면서도 강하고 현명하고 수줍은 여인으로 자라납니다.
 
그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책 속으로 들어가 꼭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고 싶습니다. 훌륭하고 자랑스럽지만 한 아이의 엄마인 저는 그저 안쓰럽기만 합니다.
 
오디오북으로 처음 만난 『Where the Crawdads Sing』은 1960년대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가 배경입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나무와 새 이름이 자꾸 나와서 어리둥절했지만,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과 질퍽한 습지의 풀냄새, 그리고 귀를 뗄 수 없는 이야기에 매료돼 연이어 두 번을 듣고 원서와 우리말로 번역된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읽었습니다. 야생 습지의 이국적인 모습은 번역가가 고르고 고른 우리말로 꼼꼼하게 묘사했습니다.
 
‘시카모어와 히코리 나무가 탁한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를 드리우고 무자비한 바람은 황량한 풍광에 햇빛이 퍼뜨린 기쁨을 하나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물이 마를 리 없는 바닷가 땅에 아무 쓸모도 없는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겨울 차디찬 습지는 어린 소녀에게 얼마나 혹독했을까요? 출산 후 내내 시린 제 손목과 팔꿈치가 더 시려왔습니다.

열네 살이 되도록 글을 몰랐던 카야가 어떻게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신비로운 야생의 법칙을 깨달아 가는지 촘촘히 보여주는 이 책은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카야는 마을의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아이의 엄마에게 더럽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가난하다고 외면하고 차별하는 가혹한 편견이 어디 1960년대 미국에만 있었을까요. 2020년의 한국에도 팍팍한 삶을 사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오며 우리는 ‘고립’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지난 4개월간 가족 말고는 사람의 손을 잡은 적이 없는 제 손도 카야의 손처럼 이웃과 친구가 그립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서로 합의한 약속임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영문도 모르고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어린 소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렇다고 카야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시 걸 Marsh Girl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카야를 잡화점을 하는 흑인 ‘점핑’과 그의 아내 ‘메이블’은 한결같은 정중함과 관심으로 대합니다. 어린 카야가 캐오는 홍합을 사주고 입을 만한 헌옷을 구해다 주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겠냐마는 점핑 부부는 카야에게 버팀목이 됩니다.
 
카야가 재판정에 섰을 때도 백인들 속에 앉아 카야를 지켜봅니다. 카야가 힘들게 캔 홍합을 팔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청소년이 생산자일 때, 소비자일 때,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정중하게 대하는지를 새삼 생각했습니다.
 
‘야생의 존재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카야는 난생처음 스스로 문장을 읽은 후,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문장이 이렇게 충만한 것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말과 글은 생각을 담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런 문장을 가득 담은 이야기의 힘, 책의 힘은 더욱 귀합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글을 읽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말하는 부분이 나오면 괜히 뭉클해집니다. 노인이 돼 처음 글을 익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처럼 말이죠.

카야는 교육이 아닌 삶으로 습지의 생태를 몸소 겪고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나중엔 도서관에서 책까지 빌리며 습지 전문가, 생물학자가 돼 갑니다. 제가 덩달아 으쓱해집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자 살인사건이 얽혀있는 법정스릴러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애정과 증오를 엮어 놓았습니다. 450여 페이지가 단숨에 읽히는 흡인력 강한 이야기입니다. 한 인간이 스스로 외로움을 넘고 빛이 되는,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를 성남시민들에게 권합니다.
 
독서릴레이에서 지난달에 소개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자세가 삶을 이룩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는 계기가 됐고 카야의 고독과도 연결돼 뭉클하더군요.
 
성남시민 독서릴레이 7월 주자는 가천대 산업디자인학과 홍의택 교수님입니다. 흥미진진한 교수님이 추천하는 책을 빨리 읽고 싶습니다.
 
성남시민 독서 릴레이는 시민과 시민이 책으로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① 은수미 성남시장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② 노희지 보육교사 『언어의 온도』
③ 일하는학교 『배를 엮다』
④ 이성실 사회복지사 『당신이 옳다』
⑤ 그림책NORi 이지은 대표 『나의 엄마』, 『어린이』
⑥ 공동육아 어린이집 ‘세발까마귀’ 안성일 선생님 『풀들의 전략』
⑦ 구지현 만화가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⑧ 이무영 영화감독 『더 로드(The Road)』
⑨ 김의경 소설가 『감정노동』
⑩ ‘비북스’ 김성대 대표 『단순한 진심』
⑪ 스토리텔링 포토그래퍼 김윤환 『포노 사피엔스』
⑫ 김현순(구미동) 『샘에게 보내는 편지』
⑬ 주부 유재신 님 『정원가의 열두 달』
⑭ 황찬욱 학원장 『위험한 과학책』
⑮ 한영준 송림고 교장 『라틴어수업』
⑯ 성남교육지원청 이동배 장학사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⑰ 김혜원 호서대학교 교수 『죽음의 수용소에서』
⑱ 정소영 세계동화작은도서관장『가재가 노래하는 곳』
⑲ 홍의택 가천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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