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 하는 남동생 따라 성남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놓인 집 한 채를 구입하고 보니 성남여자중학교 앞이었어요. 성남여중이 이사 가고 대일초등학교가 개교했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골목을 빽빽하게 수놓았어요. 제 아들이 대일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랍니다.” 30여 년 전으로 필름을 돌려보니 그럴 때도 있었다. 강영임(72) 사장이 대일초등학교 맞은편에서 문방구를 시작하던 때는 학교 수업을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진행하고, 운동회 또한 오전·오후로 나눠서 열어야 할 만큼 학생 수가 많았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이 운동장 가득하니 생각만 해도 흐뭇한 시절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까.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학교 앞 문방구를 거르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드는 아이, 세상 신중한 표정으로 뽑기에 도전하는 아이, 시원한 하드 하나에 쫀드기, 아폴로, 테이프 과자, 꿀맛나 등 당시엔 불량식품(옛날 과자)이라고 불렸지만, 세상에서 제일 저렴하고 맛있는 과자를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본격적인 하교를 서두르던 아이들. 문방구는 학용품, 체육복, 게임기, 먹을 것 등 없는 게 없는 아이들의 쇼핑 천국이었다. 재잘재잘, 시끌벅적, 참새 닮은 아이들 속에서 30년을 살았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강 사장의 기억 속 필름엔 대일초등학교 하나를 두고 예닐곱 곳이나 되던 문방구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이젠 햇님문구사, 양지문구사 딱 두 곳 남았다. 냉동창고 관리회사에 다니던 남편(이완호·78)은 정년을 맞았고 문방구집 아들이란 이유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불혹을 앞두고 있다. 강 사장의 머리 위로는 하얀 눈이 내려있다. “밤늦도록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어요. 사람 사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때도, 지금도 초등학교 앞인 건 마찬가진데 지금은 아이들보다 노인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여기는 하나도 안 변했네요. 옛날 생각나서 왔어요” 불량식품이라 불렸지만 인기가 많았던 옛날 과자들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아이 실내화 사러 왔다가 어린 날을 추억하며 한아름 사 들고 가는 손님, 동심으로 돌아가 뽑기 한 판에 도전해보는 어른도 있고, 조립완구 마니아들은 몇십 년 유행 지난 물건들을 보물인 듯 사 들고 간다. 남편은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손 놓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릴까 무서워서 노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나와 있는 것이지 수입을 바란다면 문방구 운영 못해요”라고 말한다. 기자는 강 사장의 추억 속 아이처럼 뽑기 한 판에 도전해봤다. 미니 손 선풍기에 당첨됐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강 사장이 웃는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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