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생태 이야기] 밤이면 잎을 맞대고 잠을 자는 ‘자귀나무'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6/24 [16:43]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여름에 꽃이 피고 밤이면 양쪽으로 마주난 잎을 맞대고 잠을 자는 나무가 있다. 미모사과에 속하는 자귀나무다.
 
미모사는 톡 건드리면 잎이 움츠러든다. 이는 작은 잎의 자루 아래쪽에 있는 세포에 물이 많이 저장돼 꼿꼿함을 유지하다가 자극을 받으면 수분이 빠져나가 팽압이 감소하면서 잎이 닫히는 현상이다.

자귀나무는 외부의 자극 없이 해가 지고 나면 펼쳐진 잎이 서로 마주보며 접힌다. 양분을 만들 수 없는 밤에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잎의 표면적을 되도록 적게 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광합성을 할 때 외에는 날아가는 수분을 줄여보겠다는 전략이 담긴 수면운동이다.

두 잎을 맞대고 밤을 보내는 이 특성 때문에 야합수(夜合樹)라고도 불린 자귀나무는 예로부터 신혼부부의 창가에 심어 부부 금실이 좋기를 기원하곤 했다. 재밌게도 50~80개 되는 작은 잎들이 둘씩 마주나고 맨 끝에 짝없이 홀로 남는 잎이 없다.

뜨거운 여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자귀나무꽃은 광택이 나는 비단실 여러 가닥이 부챗살처럼 꽃을 이루는데, 수꽃의 수술이다. 꽃잎이 퇴화된 수꽃의 수술은 윗부분이 분홍색이고 아랫부분은 흰색으로 발레리나의 하늘거리는 드레스처럼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서양에서는 자귀나무를 비단나무(silk tree)라고 불렀다.

도심의 공원이나 도로변에서 자주 보는 자귀나무는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오랜 옛날부터 황해도 이남에서 자생하며 우리 선조들과 함께 지내온 나무다.
 
자귀나무의 마른 가지에서 움이 트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혹시 찾아올 늦서리 걱정을 덜고 서둘러 곡식을 파종했다. 싱그럽게 커가던 자귀나무에 첫 번째 꽃이 필 무렵이면 밭에 팥을 뿌렸고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며 팥농사의 풍년을 예견했다.
 
자귀나무는 콩깍지 모양의 열매를 맺는데 스산한 겨울바람이 일면 긴 열매는 바람에 부딪혀 달가닥거린다. 이 소리가 거슬리는지 사람들은 여설목(女舌木: 여자의 혀와 같은 나무)이라 불러 그 소리의 시끄러움을 묘사하기도 했다.

나지막이 자라는 이 나무를 소가 무척 좋아해서 자귀나무를 소밥나무 또는 소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귀(목재를 찍어서 깎고 가공하는 연장)의 긴 손잡이를 만드는 데 사용돼 자귀나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자귀나무를 뜰에 심으면 미움이 사라진다고 믿었고, 친구의 노여움을 자귀나무 잎을 따서 보내 풀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자귀나무의 줄기로 절굿공이를 만들어 부엌에 두고 쓰면 집안이 화목해진다고 믿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듬뿍 받은 나무다.

7~8월 한여름 밤 많은 시민들이 무더위를 식히려고 율동공원에 나온다. 호수 주변 자귀나무꽃이 산책 나온 시민들을 반긴다. 하늘거리는 발레리나의 드레스를 닮은 꽃도 감상하고 마주한 채 잠든 잎사귀도 보며 여름밤 산책을 즐겨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