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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진 풍경] ‘석유·얼음, 아이스박스 대여와 얼음 배달’

태평동 현대얼음에서 듣는 얼음에 관한 부자(父子)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8/24 [14:0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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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얼음을 지키는 아들 정인균 씨와 아버지 정병주 씨     © 비전성남
 
▲태평동 소재 현대얼음 간판     © 비전성남
 
▲  여름철 인기 있는 대여 아이스박스   © 비전성남
 
▲ 대장얼음을 절단 중인 정병주 사장    © 비전성남
 
▲ 현대얼음의 옛날 모습     © 비전성남
 
아들(정인균·30대)의 어린 날 기억 속엔 이른 새벽 출근을 서두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남아있다. 여름방학 때면 바쁜 아버지를 돕기 위해 가게에 나가 잘라놓은 얼음을 나르고 허드렛일을 도왔다.

새벽 5시에 출근한 아버지(정병주·50대)는 “대장얼음(냉장용)을 싣고 중앙시장 두 바퀴를 돌았어요. 생선가게, 채소가게 등 얼음이 필요한 곳에 배달을 마치고 나면 식용얼음을 싣고 성남 전 지역 한 바퀴를 돌았어요. 새벽에 캠핑을 떠난다는 고객에겐 될 수 있으면 덜 녹은 얼음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늦게 배달을 했고, 밤 12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라고 호황을 누리던 시절을 회상한다.

지금이야 아이스박스 하나쯤은 집집마다 갖추고 있고 얼음 관련 식품을 취급하는 가게는 제빙기를 구비하고 있어 여름철에도 얼음을 구매하는 일은 사라져가고 있다.
 
과거, 휴가철 휴양지에선 생수 1병에 몇 천 원, 냉장용 얼음 한 조각에 몇 만 원을 호가했다.
 
여름 한철 사용하자고 아이스박스를 좁은 집안에 비치해 놓는 것보다 대여료 1만 원에 7천 원짜리 얼음을 담아가면 2박 3일 동안 바가지요금을 피해가며 찜통더위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었다.
 
얼음 가게의 시작은
난방용 석유 판매 배달업에서 시작된다

도시가스가 보급되기 전이다. 연탄보일러에서 발전한 것이 기름보일러였다. 당시는 난방용 기름(석유) 배달업 또한 호황을 누리던 때였지만 계절을 타는 업종으로 겨울 한철 장사가 끝이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겨울의 반대편에 있는 여름철 장사를 위해 가게 한편에 대형 냉동고를 들이고 얼음 배달업을 시작했다.
 
‘석유·얼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품목이 가게 간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의 간판에선 ‘석유’란 단어는 사라지고 ‘얼음’ 또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한철 벌어서 일 년을 살았어요”

“오토바이 짐칸에 겨울에는 석유통을, 여름엔 얼음을 싣고 달렸죠. 얼음 장사를 돕겠다며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손을 보탰고, 자정을 훌쩍 넘겨야 일을 마칠 수 있을 만큼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때가 좋았어요”라고.

“그날의 수입은 피로회복제였으며 재미였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석유 배달이 사라진 후 얼음 한철 장사로 일 년을 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얼음 장사가 안 돼 다른 업종에 종사하며 틈틈이 아들을 돕고 있을 뿐”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문 닫을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일을 돕던 아들은 자연스럽게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단체활동 자제, 야외행사 전면취소, 버스정류장 더위 방지용 얼음 설치 취소,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지루하게 이어진 장마까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휴가철 반짝 누려야 할 호황을 불황으로 넘겨가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그러니 개인적인 욕심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배달될 얼음을 미리 준비하는 부자,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게 잘리는 얼음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아버지의 내공이 느껴진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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