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환하다] 누군가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태평동 단청공판장
골목에서 사라진 추억, 오래된 가게를 통해 찾다
▲ 오늘도 이웃들은 단청공판장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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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주택, 새롭게 단장된 골목 풍경에서 떠올릴 수 없는 고향을 사람들은 단청공판장에서 찾는다. ‘내가 살던 고향, 태평동'을 50년 동안 골목을 지키고 있는 이곳을 통해 추억한다.
“어느 날 어린아이 손을 잡고 젊은 엄마가 들어와서 ‘저 아시겠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모르겠다고 했더니 ‘어렸을 때 물건 슬그머니 집어가다 아저씨한테 머리 쥐어박혔던 00이에요’ 하는 거예요. 한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우리 공판장을 보면 고향 느낌이 나는가 봐. 찾아와서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50년 된 가게, 그리고 공판장이란 이름만으로 그동안 쌓인 이야기만큼 먼지가 쌓이고 허름할 거라는 선입견을 안고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 바른 자세로 서서 옷깃을 매만졌다. 가게 안의 물건들은 줄 맞춰, 열 맞춰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고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혹시 직업군인 출신이세요?”라는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단청 일을 하셨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따라 단청을 그리러 다녔지. 제 직업은 단청을 칠하는 거였어요. 아주 정밀한 작업이죠. 뭐든, 세심한 부분까지 정리가 잘돼 있어야 해요.”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단청을 그렸다는 최용운 사장은 아내가 아프면서 단청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 태평동의 가파른 골목, 이곳은 과거 대림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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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광주대단지 시절 부모님을 따라 태평동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딱지 분양을 받았고, 최 사장은 100만 원에 루핑집 한 채를 사서 ‘서울상회’라는 간판을 달고 아내에게 운영을 맡겼다.
비포장도로라 비만 오면 땅이 파여 살기에 고달픈 시절이었다. ‘공판장’이란 이름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상회는 최 사장의 직업인 ‘단청’과 당시 유행하던 이름 ‘공판장’을 넣어 ‘단청공판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집도 새로 지었다.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공판장 근처엔 ‘대림시장’이 있어 제법 활기찬 상권을 가진 골목이었다.
“졸업식이나 국민학생들 소풍 가는 날엔 만날 먹던 뽀빠이 대신 값이 비싸 평소엔 먹기 힘들던 과자가 동이 났다. 명절 땐 설탕 선물이 최고였는데 워낙 잘 팔리다 보니 설탕 가격이 급등하고 결국엔 설탕 파동이 나기도 했다. 세월 따라 선물의 인기도 바뀌었다. 설탕에서 식용유, 주스, 아이가 있는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과자 종합선물세트 등…” 선물을 열거하기에 “요즘은요?” 여쭤보니 “요즘 선물은 현금이 최고죠. 물건도 잘 안 팔린다”고 한다. 편의점과 마트가 생겨 젊은 친구들은 편의점으로 가고, 공판장엔 주로 연세가 많은 손님만 찾는다.
▲ 명절 선물의 선두를 달리던 설탕과 식용유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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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되면 가게 앞엔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다.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닭을 삶기도 하고 음식을 마련해 점심 겸 술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눈다. ‘술시’는 1시 30분까지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멈춘 시간이다.
광주대단지 시절 성남에 들어온 최 사장은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골목 안 가게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웃 간에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던 곳이었다. 개발이 좋다지만 사람 사는 정이 없어졌다”며 그 시대의 풍경을 아쉬워한다.
최 사장이 계산대 위에 놓인 2천 원을 챙겼다. 간이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 동안 손님이 조용히 들어와 물건을 고르고 물건값을 두고 간 것이다. 노곤함을 풀고있는 주인을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다녀갔을 손님의 배려와 주인장의 믿음이 있는 단청공판장의 평화로운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