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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 야나체크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책 속에 흐르는 선율] – 못다 한 이야기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3/29 [17:39]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의 이름으로 인터넷 공간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실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겠지만 이장욱 작가의 단편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속에서는 문학적 환상이 가미돼 현실인지 꿈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판타지의 세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 출처: 교보문고     © 비전성남

 

“시집 한 권 낸 적 없이 가난하고 외로운” 무명 시인인 ‘나’와 나의 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속에는 두 개의 클래식 음악이 등장한다.

 

슈만의 <환상소곡집>과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두 작품 모두 소설 속 ‘그녀’가 일상에서 즐겨 듣는 작품이지만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는 ‘그녀’가 ‘나’의 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곡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레오시 야나체크. 출처: 위키피디아   © 비전성남

 

스메타나, 드보르작과 더불어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레오시 야나체크(1854-1928)는 한동안 국내에서 꽤 많은 조명을 받은 작곡가다. 

 

200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국내 출판과 동시에 그 속에 등장한 음악인 야나체크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야나체크에 대한 열기가 국내 음반시장과 연주무대에서 한동안 지속됐다.

 

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속에 나오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는 야나체크의 피아노 사이클로 모두 15개의 소규모 곡으로 이루어졌다. 표제가 있는 10곡이 수록된 첫 번째 곡집과 표제가 없는 5곡이 수록된 두 번째 곡집으로 구성된다.

 

야나체크의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작곡기법을 바탕으로 하는데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도 야나체크 특유의 작곡기법 특징을 잘 드러낸다. 짧은 멜로디 조각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선율, 잦은 리듬 변화 등.

 

이런 특징들은 야나체크가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체코 구어(口語) 연구의 결과물이다.

 

말하는 사람의 분위기, 감정, 외부 요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의 리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을 가졌던 야나체크는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환경뿐만 아니라 동반자, 말할 때의 시간, 장소, 분위기에 따라 각각의 독특한 언어 선율이 만들어지고 이런 언어 선율이 드라마틱한 음악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여겼다.

 

야나체크 음악이 지닌 이런 배경적 특징을 알고 나면 소설 속에서 야나체크의 음악이 사용되는 지점이 ‘그녀’가 ‘나’의 시 ‘리듬은 나의 것’을 소개할 때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리듬은 나의 것’ 소개 이후로 그녀에 의해 변주되는 ‘나’의 시들은 ‘나’조차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묘한 변화에서 시작해 결국 “내가 써야만 하고 쓸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작품”을 미리 알고 쓴 ‘그녀’의 시로 끝난다. 

 

리듬이 있는 문어의 압축적 결정체인 시라는 장르를 통한 ‘그녀’와 ‘나’의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풀어낸 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이다. 구어의 리듬을 활용해 음악적 드라마를 만들어낸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와 함께 이장욱 작가가 만든 환상 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해보길 바란다.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음반으로 체코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루돌프 피르쿠슈니(Rudolf Firkušný) 연주를 추천한다. 루돌프 피르쿠슈니는 5세 때부터 10년 동안 야나체크와 공부했으며 야나체크를 비롯해 스메타나, 드보르작, 마티누 등의 체코 작곡가 작품 전문 연주가이기도 하다.

 

※ 유튜브에 ‘비전성남 책속선율 못다한이야기 에이프릴마치의사랑’을 입력하면 관련 음악을 찾을 수 있다.

 

취재 조윤수 기자 choyoons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