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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동시대이슈전 <판타지>

성남큐브미술관서 6월 27일까지 열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5/24 [17:5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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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날. 2021년 동시대이슈전 <판타지>가 한창인 성남큐브미술관을 찾았다.

동시대이슈전은 예술을 통해 시대적 이슈를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되짚어보는 주제 기획전시로, ‘동시대미감전과 격년으로 개최된다.

 

 

<판타지>는 팬데믹 시대에 일상이 돼버린 비대면을 주제로, 가상과 실재가 혼재된 삶을 살고 있는 동시대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 2021 동시대이슈전 '판타지'가 성남큐브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김익현, 김진우, 김희천, 윤석원, 이재원, 조이경, 허수빈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실존(實存)하는 세상과 가상(假想)에 대한 각기 다른 시선의 회화, 설치, 미디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이재원 '펼치고 접기'와 '리토폴로지' 등

 

기획전시실 입구부터 분해된 모형과 전개도가 연상되는 이재원 작가의 설치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웹에서 자신이 매일 생활하는 공간 이미지들을 채집한 뒤 재구성하고 펼치거나 나열해 관념 속 이미지 풍경으로 구성한 펼치고 접기시리즈와 리토폴로지(RETOPOLOGY)’.

 

▲ 이재원 '구체풍경'

 

광화문 광장에서의 1인 시위 경험을 치환해 탄생한 '구체풍경(2019)'은 광화문 거리가 프린트 된 반투명한 구 안쪽에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넣고 모니터와 연결한 작품이다.

 

구체라는 단어에는 공처럼 둥근 모양의 구체(球體)’구체적(具體的)’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관객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과 구체의 표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작품 속 그 거리 위에 서 있는 착각을 경험한다. 그렇게 '바라본다'는 행위에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 조이경 '저 샤워기는 그 샤워기가 아니었음에도'

 

하얀 문을 통과하자 조이경 작가의 설치작품 '저 샤워기는 그 샤워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2015)'가 나타난다. 다가가자 불이 켜지고 바닥에 놓인 샤워가운과 슬리퍼, 커튼이 쳐진 욕조가 보인다.

 

▲ 알프레드히치콕의 '사이코'의 한 장면이 나타난다.

 

관객이 다른 쪽으로 움직이자 이번에는 불이 꺼지고 샤워기 물이 쏟아지면서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한 장면이 벽을 따라 흐른다.

 

▲ 붉은 카펫 위 욕실화

 

영화와 똑같이 재현된 무대장치가 아님에도 우리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기억을 소환하고 시각화한다. 조이경은 재현과 소환이라는 미술적 장치를 통해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현대사회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온전한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 김익현 작가의 '42000ft'가 상영 중이다.

▲ 김익현 '42000ft'

 

의자가 놓인 넓은 홀에서는 코로나19로 달라진 이동개념을 주제로 한 김익현 작가의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지난 몇 년간 다녀온 여행지와 현재의 공항 모습을 비교 편집해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을 잇는 작품 '42,000피트(2020)'가 상영 중이며, 그 반대편에는 헤드폰과 연결된 머리비행(2020)’이라는 영상이 걸려 있다.

 

▲ 김익현 '머리비행'

 

머리비행은 조종사가 맨몸으로 비행기의 이륙부터 착륙까지의 전 과정을 상상하면서 동작과 신호로 시뮬레이션하는 조종훈련방법으로, 지금은 비행하지 못하는 실제 조종사의 모습을 담았다. 김익현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연결된 세상이 이동 제한으로 모두 멈춰버린 상황에서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 김진우 작가의 드로잉들

 

어두운 통로를 지나자 입구부터 김진우 작가의 검은 드로잉이 천정부터 바닥까지 가득하다. 오래된 유물의 그림 같기도, 외계생명체의 설계도 같기도 한 그림 뒤로, 그가 설치한 진화의 비밀: #J-1(2017)’이 나타난다.

 

▲ 김진우 작가의 '진화의 비밀 #J-1'

 

거대한 미사일 모양의 몸통에 동물다리를 한 철제작품은 지구의 에너지 공급원이자 진화의 근원을 상징하는 정체불명의 물체다. 가까이 다가서면 모터가 움직이면서 빨간 빛을 뿜는다.

 

회화와 건축공학, 기계공학을 공부한 김진우는 자연과 인간, 기계를 융합한 작품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생명의 근원에 관한 관심으로 파고든다. 기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들이 작가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 준다.

 

▲ 윤석원 'MAY'

 

윤석원 작가는 팬데믹에 따른 일상의 변화를 투영하고 사유하는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자신의 결혼식 단체사진을 모티브로 한 작품 ‘MAY(2020)’에는 신랑, 신부, 하객 전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마스크라는 현재의 우리를 상기시키는 상징물을 등장시켜 현실의 고단함과 안타까운 감정을 자아낸다.

 

▲ 윤석원 'People and Person'

▲ 윤석원 'Kiss2'

 

51명의 근대 유명인물들을 담은 ‘People and Person(2019)’ 앞에 서면, 백남준, 천경자, 박수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들의 옛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윤석원 ‘Ancient futures’와 ‘Abyss’ 등

 

자가격리의 현실을 잠수함에 비유한 설치작 ‘Ancient futures(2017-2018)’Abyss(2017)’는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에코 같은 군 무전통신용어나, 편지는 수용성 필기도구만을 사용한다는 설정만으로도 답답하고 긴장된 현재의 일상을 잘 드러낸다.

 

▲ 허수빈 '그 날 이후'

 

허수빈 작가의 공간으로 들어서자 창문의 위치가 제 각각인 사각형 건물이 나타난다. 빛이라는 매체를 통해 동시대적 상황과 감성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방식답다. 어느 집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나 작은 창문으로 내다보는 좁은 시야의 바깥 풍경, 담벼락에 비친 햇빛 등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우리의 현실을 조우한다.

 

▲ 허수빈 '그 날 이후' 4면의 창문 중 하나에서 빛이 새나온다.

 

작품 그 날 이후(2021)’에 등장하는 각각의 창문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평범한 일상의 한 귀퉁이를 펼쳐 보이듯 작가의 채집된 감정의 기억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에게 심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 김희천 '랠리'

 

김희천 작가는 기술 발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변화에 집중한다. 미디어작품 랠리(2015)는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감각을 담은 32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다. 장거리 연애하던 아르헨티나 여자 친구와 이별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 32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로 제작된 '랠리'

 

흔들리고 중첩된 흑백 화면들이 명상부터 건물 외벽의 유리에 비친 세상, 아버지, 파티 모습 등으로 내레이션과 함께 스쳐간다. 영상 속 반사된 이미지로 점철된 시공간 너머로 우리는 서로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은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유명화가들의 작업실사진을 수집해 만든 윤석원의 ‘Ancient futures'

 

기술은 실존(實存)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를, 가상(假想)과 공상(空想)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로 이끌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형식의 전시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래서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 모른다.

 

2021년 동시대이슈전 <판타지>를 통해 불안으로 위축된 현재와 대면하고 우리가 열어가야 할 미래로 한발 다가서는 시간 가져보길 추천한다. 이번 전시는 627일까지 열린다. 

 

 

성남문화재단 큐브미술관 www.snab.or.kr

취재 양시원 기자 seew2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