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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역사이야기·금토동(3)

  • 관리자 | 기사입력 2010/11/22 [14:2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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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곳곳에는 많은 문화유적과 훌륭한 역사적 인물이 있다. 

금토동을 지나 붉게 발열하는 청계산 등산로를 따라 300여 미터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정치가며 문장가였던 청백리 남공철(南公轍)의 묘역(금토동 산66번지)과 그가 만년을 보냈던 귀은당(歸恩堂)지가 있다.
<사진은 성남시 향토유적 제4호 남공철 묘역>

본관이 의령(宜寧)인 남공철(1760-1840)의 자는 원평(元平)이며 호는 사영(思潁), 금릉(金陵)이다. 1780년(정조4) 초시에 합격하고 1784년(정조8)에 아버지(남유용·南有容)가 정조의 스승이었던 관계로 음보(蔭補)로 세마(洗馬)를 제수 받았으며 산청과 임실의 현감을 지냈으나 과거 준비를 위해 사직했다.

1792년(정조16) 식년 친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그는 홍문관 부교리, 규장각 직각(奎章閣直閣)에 임명돼 규장전운(奎章全韻) 편찬에 참여해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 후 조선 개국 초부터 숙종 때까지의 명인(名人)의 약력을 모아 엮는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임 되면서 후일의 정치적 동지인 김조순(金祖淳), 심상규(沈象奎) 등과 함께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고 대사성(大司成)으로 인재양성에 힘썼다.

정조가 총애한 그는 정조 치세에 나온 인재라는 평을받았고『정조실록』편찬에 참여, 아홉 번의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거쳐 14년 동안 재상을 지냈으며 1833년(순조33) 영의정으로 치사돼 봉조하(奉朝賀)가 됐다.

당시 제일의 문장가로 시와 글씨에 뛰어난 그는 금석문(金石文)과 묘갈(墓碣)을 잘 썼고 순조 때 전사자(全史字)라는 동활자를 만들기도 했다. 

글 읽기를 즐겨하고경전(經典)을 연구했던 그는,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며 문인으로 화려한 당나라의 시풍을 반대해 새로운 시풍을 열어 문학의 기초를 확립했던 구양수(毆陽脩)를 좋아했다.

문학의 산실, 귀은당

순조 원년(1801)에 옥계산중에 있는 정자를 사들인 그는 구양수의 사람됨과 문장과 덕업을 흠모한다는 의미의 우사영정(又思潁亭)이라는 편액을 걸고 그 옆에 옥경산장(玉磬山莊)을 지어 간간히 그곳을 찾았다. 

‘옥같이 맑은 물이 사철 흐르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청계산 입구의 옥경동(玉磬洞)은 그가 마음에 오
래 둘 만큼 아름다웠다.

‘작은 언덕이 첩첩이 있어 마치 솥 같기도 하고 바둑판 같기도 하고 말의 갈기털 같기도 하다’는 그의 저서『둔촌제승기(遁村諸勝記』의 일부 내용처럼, 청계산 둔촌의 지형과 주민들의 순박한 삶의 모습을 좋아해 1833년 은퇴 후 둔촌으로 옮겨 99칸의 저택을 짓고 만년을 보내게 되는데 옥경산장이 모태가 됐다.

‘군주의 은혜가 두터워 이곳에서 한가롭게 머물 수있다’해 <우사영정> 편액을 <귀은당>이라 개칭했다. 현재 터만 남아 있는 귀은당은 그가 수많은 책을 저술한 문학의 산실이었으며,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들을 통해 귀은당이 축조되기 이전부터 고려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이 있던 것으로 보아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99칸의 집터, 귀은당은 고려시대의 학자, 이집(李集)선생이 살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집터 뒤쪽 언덕에 그의 어머니 묘역과 그의 묘역이 있는데 <성남시 향토유적 제4호>다.

문학적 명성 중국까지 떨쳐

‘문학과 재서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용의(容儀)가 훌륭하여 다른 신하의 본보기가 되고 지조가 드높아 퇴폐한 풍속을 바로잡을 만하다’고 칭송 받았던 남공철. 구양수의 문장을 순정(淳正)한 법도라 해 가장존중했고 중국까지 이름을 떨친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는 서화론에도 매우 조예가 깊어 많은 금석문과묘갈과 저서를 남겼다.

그는 순조, 익종의『열성어제(列聖御製)』를 편수했고, 『고려명신전(高麗名臣傳)』『귀은당집(歸恩堂集)』
『금릉집(金陵集)』『영옹속고(穎翁續藁)』『영옹재속고(穎翁再續藁)』『영은문집(瀛隱文集)』등 많은 저서가 있다. 

산 빛이 곱다. 깊고 아늑한 청계산 자락 도덕봉에 있는 그의 묘역을 고운 가을빛이 쓰개치마처럼 두르고 있다. 

마치 그의 아름다운 성품과 재능을 보호하는 것 같다.

자료제공|성남시·성남문화원
도움말|윤종준 향토문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진영욱 성남시 학예사

조민자 기자 dudlfdk@hanmail.net

※ 우리 동네 역사이야기 연재가 이번호로 끝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