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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일요일은 목욕하는 날, 동네 목욕탕에서 지난 한 주를 씻어 냈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이용되던 은행목욕탕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7/22 [09:5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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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목욕탕 입간판/ 오후 5시, 손님이 줄어 일찍 문을 닫는다는 은행목욕탕     

 

 

일요일은 목욕하는 날

목욕 바구니에 샴푸를 담고, 칫솔, 수건, 때수건을 챙기고, 가끔은 우유도 한 개씩 챙겼다. 주택의 구조상 욕실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목욕은 일종의 행사였다.

 

설날을 앞두고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수증기와 열기 사이에서 옆 사람에게 때수건을 내밀며 “등 좀 밀어주실래요?” 서로의 등을 맡겨가며 개운함을 만끽했다.

 

더운물에 몸을 녹이고 때를 밀고 나오면 볼은 발그레해지고 노곤하게 몸이 풀어졌다. 쪼글쪼글해진 손가락, 발가락은 시간이 지나면 제 모양을 찾았다.

 

목욕탕의 굴뚝은 장작 때는 연기를 뿜었고 목욕물은 따뜻하게 데워져 탕으로 들어갔다.

 

▲ 목욕탕과 함께 나이 들어갔다는 손님들의 인사가 서글프다고 말하는 이용휘 사장    

 

35년 동안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은행목욕탕 김영식·이용휘 부부에게 목욕탕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0년대, 40대 중반에 목욕업을 시작했는데 목욕탕을 인수했을 당시엔 장작을 때서 물을 데워 사용했어요. 한 3년 정도 장작을 사용하다가 벙커시유로 바뀌고, 약 22년 전 리모델링하면서 가스로 바뀌었죠”라며 말을 이었다.

 

▲ 물 빼기 전, 손님들의 흔적이 보이는 여탕 풍경     

 

▲ 단골손님들이 보관한 목욕바구니에서 동네 목욕탕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빨래금지’란 문구는 목욕탕마다 붙어있었다. 빨랫감을 들고와서 몰래몰래 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물이 아까운데 물 빼는 시간에 와서 빨래 좀 하면 안 돼요?”란 부탁도 많았다. 물론 안 되는 말이다. 욕탕 청결 유지를 위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5세 이상 남자 어린이, 여탕 안 돼요! 식구들이 같이 목욕하러 와도 목욕탕 앞에서는 남자는 남탕으로 여자는 여탕으로, 성별로 나눠진다. 엄마랑 같이 온 아들은 어떻게 하나?

 

여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와서 다섯 살이라고 우기는 엄마, 아직 학교 안 들어갔으니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는 엄마 앞에서 눈치 빠른 아이는 자기가 먼저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정확한 나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업주는 아이의 체구로 나이를 가늠해 결정했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5세부터 성별에 맞게 탕에 들어가야 한다고 법이 개정됐다.

 

▲ 목욕탕나이와 같다는 오래된 선풍기는 지금도 잘 돌아간다.     

 

▲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은 별도 판매하고 있다.     

 

목욕문화의 변화 35년 전 800원이던 목욕요금이 7,000원이 됐다. 손님이 들고 오던 수건, 샴푸 등 목욕용품이 지금은 목욕탕에 마련돼 있다. 약 20년 전 새로 들어온 찜질방 문화가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찜질방에서 맥반석 달걀을 구워내니 맥반석 달걀 유통업자가 생겨났고, 동네 목욕탕에도 구워진 달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욕 후 마른 입을 바나나우유, 딸기우유, 봉지에 든 초코우유를 마시며 달래던 것이 목욕탕을 찾는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우유보다 냉커피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 목욕 후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음료를 나눠 먹던 일은 이젠 아련한 기억이다.

 

동네 사랑방인 목욕탕이었지만 이젠 목욕 후 머물지 않고 바로 떠난다. 24시간 운영하는 목욕탕과 찜질방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 동네 목욕탕 손님은 예전 같지 않다.

 

▲ 은행목욕탕 입구(은행목욕탕 031-734-8743)     

 

내부 수리 중 여름이면 목욕탕 출입문에 어김없이 붙어있던 ‘내부 수리 중’. 시설점검을 위한 약 한 달간의 휴무는 매년 여름마다 이뤄졌다. 매일 물에 닿는 시설이라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했다. 손님이 없는 여름철을 이용해 실시하던 시설 점검을 위해 올해도 한 달 정도 쉴 예정이다.

 

가까이에 목욕탕이 있어 좋다는 사람들, 먼 곳에 있는 찜질방보다 동네 목욕탕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현재인 것이 또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물에 씻기지 않고 보송보송함 그대로 가슴에 남아 있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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