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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항몽유적지서 새롭게 마음을 다지다

성남시재향군인회 회원들, 안보현장을 가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8/30 [11:0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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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재향군인회는 안보견학 유적지를 다녀오면서 제주도를 찾는 여행자들의 안보의식과 유적지 견학 시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남기고자 한다.

 

825() 성남시재향군인회(회장 우건식) 회원들은 23일 제주도 항몽유적지를 비롯해 알뜨르 비행장,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송악산 동굴 진지, 황우지 해안동굴, 황우지 해안 전적지 등과 상효원, 더마파크, 민속마을을 탐방하고 최남단 마라도까지 안보의식을 높이는 안보현장 견학을 다녀왔다.


▲ 제주공항에서 회원들에게 향군단체활동을 잘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우건식(성남시재향군인회) 회장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우건식 회장은 이번 제주 안보현장 견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안보견학 장소, 문화탐방 장소 선정에 안전을 대비해 세심한 준비를 했습니다만 모두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생각되나 당부사항을 잘 준수해 보람 있는 안보견학이 될 수 있도록 향군정신으로 협조해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 항몽유적지 '순의문'을 들어서는 회원들

 

▲ 삼별초 역사의 현장 '항몽순의비'

 

▲ 항몽유적지 '항몽순의비' 앞에서 묵념을 하는 회원들

 

항몽유적지를 찾아 순의문(殉義門)’에 들어서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가 눈에 들어왔다. 재향군인회 성남지회 회원들은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항몽유적지 전시관에 들어서니 삼별초(三別抄)의 대몽항쟁요도(對蒙抗爭 要圖)에 삼별초의 공격 경로, 이동 경로, 격전지가 잘 표시돼 있다.

 

항몽유적지에는 고려 삼별초 군이 제주도에 입도해 1273년 항쟁이 끝날 때까지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항파두성 주위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 '항몽순의비앞'에서 안보견학 기념촬영

 

▲ 항몽유적전시관

 

▲ 항몽유적전시관에 있는 삼졀초의 '대몽항쟁요도'

 

▲ 삼별초 군은 여, 몽연합군을 맞아 함덕, 파군봉, 항파두성에서 최후의 혈전을 벌였다.

 

70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사용되던 무기류, 의류, 문서 등은 소실돼 찾아볼 수 없지만, 기와류, 돌쩌귀, 자기 파편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의 크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작지만 남아 있는 유물에 민족 불굴의 대의를 지켜 궐기한 삼별초 군의 민족자존과 호국정신의 숭고하고 강인한 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회원들은 역사의 유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진 촬영을 하며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 산양곶자왈 숲에서 잠시 더위를 잊어보는 우건식 회장과 회원들

 

잠시 후 산양 곶자왈을 걸으면서 제주의 자연에서 땀을 식혔다.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은 지하수를 머금고, 바위 사이로 지열이 분출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고, 더운 여름에는 서늘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 알뜨르 비행장, 남제주 격납고 이정표

 

▲ 너른들에 비행기격납고를 찾아가는 회원들

 

▲ 여러 개의 비행기 격납고가 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날씨지만 알뜨르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를 찾았다.

알뜨르(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 비행장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쪽 너른 벌판에 제주도민을 동원해 건설한 군용비행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기지로 삼아 약 700km 떨어진 중국의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를 알뜨르(알드르)’에서 출격시켰다.

 

1938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오무라 해군 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알뜨르 비행장은 연습비행장으로 남았다.

 

▲ 격납고 속을 살펴보는 회원들

 

▲ 일본이 남기고 간 비행기격납고 앞에서 안보의식을 다져보는 회원들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를 찾은 회원들은 비행기 격납고를 보고 말을 잊었다. 비행기 격납고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 만든 군용비행기격납고다.

 

1943년 일제는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의 격납고 20기를 만들었다. 현재 19기가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제주도를 일본군 출격기지로 활용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제주도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군사시설 유적지다.

 

▲ 황우지해안 무장간첩 섬멸전적지 전적비 앞에서

 

▲ 일본군이 사용했던 황우지 해안동굴

 

200566일 세워진 황우지 해안 무장간첩 섬멸 전적비를 찾았다.

 

1968820일 밤, 북한군 753부대 제51호 간첩선이 통일혁명당 핵심요원인 남파간첩을 북한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침투했다.

 

서귀포경찰서 작전부대와 군의 합동작전으로 6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경찰과 군은 간첩선을 격침시켰다(무장간첩 생포 2, 사살 12, 기관단총 14정과 고사포 등 다수의 무기).

 

이후 국립경찰 창설 60주년을 맞아 국가 수호의 사명을 다한 용사들의 빛나는 투혼을 높이 기리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고자 2005년 서귀포경찰서장이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황우지 해안동굴, 송악산 해안동굴 진지는 바닷가뿐 아니라 송악산에도 일본군들이 주둔했던 동굴들이 남아 있다.

 

23일의 안보견학은 안보현장을 돌아보는 향군회원들이 우건식 회장, 권혁성 사무국장의 당부를 잊지 않고 향군정신을 발휘한 견학이었고, 많은 인원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 야자수 나무가 있는 제주도 느낌으로

 

▲ 김영숙(왼쪽 두 번째) 여성회장과 회원들

 

안보견학을 다녀온 후 휴일 내내 감사 인사가 전해졌다.

 

김영숙 여성회장은 “70여 명 회원이 낙오자 없이 안보견학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회장님과 사무국장님의 수고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보정신 덕분이라며 보람 있는 견학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편순자 여성부회장은 알찬 프로그램으로 보람 있는 안보견학을 할 수 있어서 재향군인회 회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전적지 답사 후 최남단 마라도에서

 

▲ 마라도 천연보호구역은 200년 7월 국가지정문화재로지정. 천연기념물 제423호

 

아직 코로나19는 진행되고 있지만 아름다운 제주를 찾는 여행객은 늘어나고 있다.

 

유적지에서는 개인으로서의 안보의식을 가져보자. 최남단 마라도의 푸른 잔디와 하늘빛을 닮은 바닷가에서 크게 심호흡해 보자. 쓰레기 하나 버리고 오지 말자. 아픔이 있는 섬, 아름다운 제주도, 세계유산을 내 것처럼 지켜가자.

 

취재 이화연 기자 maekr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