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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인의 ‘낭독하는 오후’ 강연

코끼리서점···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9/23 [20:0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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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오후 분당 수내동 코끼리서점(대표 문선미)에서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를 발간한 서효인 시인의 강연이 있었다

 

▲ 서효인 시인

 

낭독하는 오후의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작가회의가 지원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강연이다

 

▲ 서효인 시인의 저서

 

서효인 시인은 2006년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 세계대전, 거기에는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아무튼, 인기가요, 여수, 잘 왔어 우리 딸등이 있다.

 

세 번째 발간한 시집 여수는 대산문학상과 천상병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날 강연은 시 낭독회로 진행됐다. 시를 낭독하면서 시가 탄생하게 된 시인의 삶의 배경과 시를 쓰게 된 동기 등을 이야기했다.

 

▲ 서효인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첫 번째로 낭독한 <여수>라는 시는 8년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 연애 시절 싸우고 헤어지려 했던 일과 아내의 고향인 산업단지가 있던 여수에 대한 추억을 담았다.

 

사회 비판적이고 역사적 맥락이나 철학적인 논의가 있는 내용을 선호했던 시인은 처음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고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여수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 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항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한강철교>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했다. 이 시는 다운증후군인 딸이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퇴근 후 딸을 보러 가는 길 지독히도 막히던 한강철교 위에서 느낀 심경을 담아낸 시다.

 

힘들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기분이 들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바라본 도시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잔혹한 전쟁의 아픔을 안고 있는 한강철교위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계기로 세상을 좀 더 열심히 살아보고자 다짐해보며 자신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서효인 시인이 강연을 하고 있다.

 

<서른 몇 번째 아이스크림>은 작가가 30년 만기 대출로 집을 샀다는 내용이 배경이다. 돈을 갚기 위해 30년 동안 잘 살아가야 한다. 시인은 지식인이고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편견을 깨고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다. 시인은 시속에서 자잘하기도 하고 세속적이게도 보일만큼 솔직함을 보여준다.

 

서른 몇 번째 아이스크림

 

우리는

아직 아버지는 아니고

어머니는 더더욱 아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에 적당할 나이

책상 위에 놓인 청첩장의 디자인을

살펴볼 나이 예쁘고 작은 종이에서 단서를 찾아

남의 삶 전반을 추리하는 나이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대봉하는 나이

나는 오늘 저녁 좋은 아빠의

상징인 배스킨라빈스에 갔다

단단하게 얼어버린 설탕덩이를 뜨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손목을 애처롭게 여기는 나이이지만 카드를 내밀기 전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나이이며 포인트 적림과 사은품을 챙기며

 

중략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 20년 지나 30

나는 은행과 약속을 했다 죽지

않기로 성실히 살기로 이 약속은 녹지

않는다 동료의 조모상을 알리는 문자가

온다 우리 할머니가 몇 살이더라

.

.

▲ 강연에 참석한 독자들

 

<두 번 자는 인간들>은 장인어른 제삿날 처가에서 장모님이 사위에게 낮잠을 권하고 밤에도 또 잠을 자고 장인의 제삿날 최대한 길게 살 궁리를 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최근 한국문학의 큰 이슈였던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남자이면서 평범한 4인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시인은 색다르게 참여하고 있다. 나의 모습을 솔직히 까발림으로써 떠오르는 전형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 자는 인간들

 

처가에 챙겨간 가방에 칫솔이 없다

그는 추잡스러운 인간이 되어

낮잠을 잔다 서서방, 들어가 자게, 라고 장모님이

말했기 때문, 그는 추잡스러운 인간이기에

자라고 한다고 자는 사람을 만났는데

아마도 장인어른인 것 같다 그렇지 오늘은

제삿날이니까, 어린 애인이 많이 훌쩍거리던 날이니까

 

중략

 

좀 더 자라고 하여 자는 인간은 부스스 깨어나

머릿털이 짓뭉개진 칫솔을 하나 찾아

이를 닦는다 여태

장인의 칫솔이 있다니 그는

추잡스러운 놈이 되어 최대한

길게 살 궁리에 골몰한 채

두 번 절한다

.

.

▲ 서효인 시인과 독자들

 

현대적 의미의 시는 시인과 시적 화저가 나뉜다. 시인은 시적 화자를 빌어 시를 쓴다. 시인이 나쁜 내용을 썼다고 시인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이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효인 작가는 시를 비판할 때는 시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 아닌 시를 못 쓴 것에 대한 비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에서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시인 자신의 모습과 상상한 것이나 바라는 내용을 모두 담았다. 독자가 시를 읽으며 시적 화자와 시인이 어느 정도 일치할까를 생각해보며 시인과 시적 화자가 줄다리기를 하듯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10월에도 11일 편성준 작가, 18일 박산호 작가와 함께하는 두 번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코끼리서점으로 전화문의하면 무료로 강연에 참석할 수 있다.

 

코끼리서점 031-711-0295

취재 나안근 기자 95nak@hanmail.net